앨 고어 부부의 결별 소식은 미국 시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에서 결별이나 이혼이라는 말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겠으나 고어 부부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8년 동안 부통령으로 지낸 인물이다. 고어는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로 오스카상을 받았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2000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조지 부시에게 패배한 그는 관심을 환경운동으로 전환, 승화시킨 인물로서 큰 주목을 받아왔다.
미 정계에서 금실 좋기로도 유명한, 바른 생활의 전유물로 비쳤던 고어 부부가 40여 년 간의 결혼생활을 접고 결별에 합의했다는 소식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체면을 중시하고 사회 시선을 의식하는 우리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우리 한국의 전통적 가족 제도는 기본적으로 유교적 제도이다. 오늘날, 페미니즘 운동에 의하여 남성 중심 사상을 표상하는 호주제도가 폐지되고 여권이 신장되었지만, 유교문화의 모순과 그 잔재는 아직도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이 남아 혼란을 야기시킨다.
유교적 가족 제도의 문제점은 부부를 가족관계의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부자 관계가 중심이 된다. 이것은 가족 간의 인간관계가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종속 관계임을 나타내는 권위 복종의 역학이다. 즉, 사랑을 기본 이념으로 이루어져야 할 부부관계가 지배와 복종의 종적인 관계가 되는 것이다. 사대부에 의해 주창된 유교적 부권 중심의 가족제도와 국가의 기본이념에서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여성이다.
그 후유증과 대물림은 여성의 법적 지위가 향상되고 남녀평등을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관습적인 집단 무의식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죄의식 없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가정폭력과 성폭력이 한 예라고 생각한다. 이는 여성들에게 결혼 기피증과 저출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 6월 14일,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서는 한인 남성(49세)이 아내(47)와 딸(15)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아이의 교육문제와 경제적 압박이 가족갈등의 요인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추정한다(한국일보, 6월 17일). 몇 해 전에는 경제적 무능력을 비관한 아버지가 어린 자녀를 차 안에 가둬놓고 불을 질러 태워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기도한 사건도 있었다.
복지 국가인 미국이민 사회에서도 유독 우리 민족에게만 가족동반 자살이라는 특이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유교사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문제를 함께 풀어가야 할 가족을 대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혼자서 부양해야할 소유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가정의 불화로 살인을 해야 할 만큼 절박한 부부사이라면 차라리 이혼을 하거나 결별을 하는 것이 함께 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지명도가 대단히 높은 고어 부부도 미국인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인의 눈이 따갑게 바라보는 앞에서 합의 이혼을 선언했다.
필자는 어떤 결혼이든 백퍼센트 만족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상처 없는 결혼 또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억겁의 인연으로 만난다는 부부의 연을 백년해로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이상형은 없겠지만, 범행을 저질러야 할 만큼 도저히 화합이 불가능하다면 이혼을 선택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일생을 동행해야할 부부에게 자녀들에게 쏟는 정성의 십분의 일이라도 쏟을 수 있다면 어떨까? 나의 기대에 맞추기보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노력한다면 백년해로가 그다지 어려운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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