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은 부부와 함께 생애를 통한 동반자이다. 벗이 있는 곳에 우정이 있고 우정이 있는 곳에 벗이 있다. 일명 친구(親舊)라고도 하는바 이를 풀이하면 오래인 친교를 의미한다.
서양 속담에 옷은 새로울수록 좋고 친구는 오래일수록 좋다는 말은 오래 사귐으로써 두터운 정과 신뢰를 오래 쌓을 수 있다는 뜻으로 친구에 대한 동서의 개념이 동일하다고 본다. 예로부터 “물은 건너보아야 알고 사람은 겪어 보아야 안다”하였음은 친교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기에 신중한 선택의 교훈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찌되었든 평소 모든 친구는 내가 풍요로울 땐 많은 사람이 나의 친구 같지만 어려울 땐 나의 곁을 떠나 외면하는 벗이 많음을 볼 때 진정한 친구는 결코 많지 않아 희소가치가 있다고 본다. 옛날 어느 정승집 개 죽음에 쇄도했던 문상인이 정승 사후엔 조객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비록 벼슬은 얻었지만 평생 참된 친구 하나 얻지 못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소급하여 옛날 어느 두 철학자의 우의 깊은 정담을 들어보자. 때마침 와병중인 친구를 문병한 철인은 이 세상에서 단 두 사람 밖에 없는 벗 가운데 자네의 건강이 좋지 못해 매우 안타깝다며 위로와 쾌유를 기원하였다. 이에 병석의 친구는 나의 벗은 이 세상에서 단 자네 한 사람뿐인데 자네는 ‘두 사람의 친구를 얻었다니 크게 성공한 사람일세.’ 이 대화를 통한 진실한 친구는 결코 많지 않다는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더 일깨워 주고 있다.
여하튼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에 예로부터 친교에 관한 유래를 살펴보면 우정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관포지교(管鮑之交)는 중국 제나라 때의 관중과 포숙의 사귐을 말하는 바 부유한 포숙은 가난한 관중과 동업으로 얻은 이익을 관중이 속여 더 많이 챙겨 갔지만 나보다 더 가난했기에 이를 이해함으로써 탓하지 아니 했고 사업에 실패하여 포숙을 괴롭혔지만 모든 일은 성패가 있는 법이라 오히려 관중을 위로 격려했다.
그뿐 아니라 한때 우연한 정적이 된 후에도 포숙은 관중의 생명과 고위관직을 구해 주었으며 관중의 실책으로 수차례 관직에서 물러났을 때도 그의 능력은 탓하지 않고 친구의 운이 따르지 못했다며 위안하였고 또 한 전쟁에서 도망 온 관중에겐 비겁하다 하지 않고 노모가 계시기 때문에 효심으로 보았다. 이와 같이 두 사람의 우정은 이해(利害)와 시세(時勢)를 초월한 변치 않은 믿음과 의리의 친교로 기록은 전하고 있다.
예로부터 교우관계는 믿음을 근본으로 삼았기에 삼강오륜엔 붕우유신(朋友有信), 화랑오계엔 교우이신(交友以信)이라 하였고 불변의 우정이 중요하였기에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엔 변치 않는 물과 돌, 소나무와 대나무 달을 시가로 찬미했다. 어쨌든 일생의 반행자인 벗과 우정은 이해(利害)를 초월한 변치 않는 관계로서 사랑과 믿음 안에서 애환과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이 참된 벗과 우정이라 정의할 수 있다. ‘벗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벗 선택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익우와의 친교는 익자가 되고 손우와의 사귐은 손자가 된다는 뜻의 격언으로 주근자적(朱近者赤)이요, 붉은 것을 가까이 하면 붉어지고 묵근자흑(墨近者黑)이라 검은 것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 늦으나마 필자의 진정한 벗은 과연 누구이며 몇이나 되는지 명상의 세계에서 헤아려 보고 싶다.
정두경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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