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스스로 부끄러워 몸서리쳐지는 일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1977년 대학 1학년을 마친 겨울방학 초엽에 흥사단 아카데미 동기 중 어느 여학생이 보람 있는 제안을 했다. 2개월 남짓한 방학기간 동안에 불우이웃돕기와 갱생교육을 겸할 수 있는 좋은 자원봉사처가 있으니 우리가 그 일을 한번 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시내 변두리지역에 위치한 갱생원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을 찾다보니 중학생 또래부터 20세 미만의 젊은 친구들 10여명을 대상으로 검정고시 대비 야학을 하기로 결정하고 사범대 학생 3~4명을 중심으로 학사편성을 하고 하루 두 시간씩 주 3회가량 야학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억도 희미할 ‘사랑의 집’의 시작이 그랬다. 뚜렷한 성과도 없었지만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저들과의 처음 약속을 버리지 못하는 나약함이 그 일을 1년간 지속하게 했다. 열악한 위생환경과 교통, 빈약하고 합목적성이 결여된 프로그램으로 나중에는 나와 사범대 여학생 단둘이 이끌어가는 상황에 이르고, 원생 중에 한명인 조영래가 폐결핵으로 사망하는 일이 생긴 뒤에 그 일을 접게 된다. 세상에 태어나서 스물도 못된 나이에 어디서 태어나 세상언저리를 배회하다가 병마로 길거리에 쓰러져 죽은 젊은이의 얇은 널빤지 관을 앞에 놓고, 막연했던 기도와 찬송을 부르는 순간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애시 당초 빵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슨 방정식이 필요하고, 나랏말도 아닌 영어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저 부모 잘 만나서 대학가방 들고 거들먹거린 죄책감과 능력도 의지도 계획도 없이 시작한 일의 끝이니 비참하기가 짝이 없었다.
보람 없이 끝이 난 부끄러웠던 그 일처럼, 최고나 정상과는 거리가 먼 나의 짧은 인생이지만 이 일로 인하여 항상 소외된 소수에게 시선이 머물게 되고, 승자의 편에 서서 환희를 구가하는 데에는 아직도 어색하기만 할 것 같다. 패배한(?) 소수의 목소리와 그들의 숨결에 다가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런 인생의 궤도를 타고 있는 것, 그런 것들이 온당한 삶의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그 일이 나에게 준 유일한 위안거리이다.
생떼같이 취급받고, 억지와 반대만 하는 듯이 매도당하는 현장, 정신대할머니 문제와 용산참사 피해자 가족, 나아가 독도문제와 팔레스타인 문제가 그것이다.
이미 지난 일이 되었지만 언론법 개정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때에 국회에서의 난투극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겠으나, `왜 그렇게 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이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려 한다.
강자의 역사에 약자들, 거기에서도 소외된 소수는 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우리에게 던지는가,
최근 워싱턴 한국일보에 기획 연재되고 있는 ‘양극화, 대한민국이 갈라진다’는 우리에게 커다란 숙제의 현장을 짚어주고 있다.
이건 윤리도 도덕도 없다. 살아남은 자가 도덕이요 가치이다.
기업 현장에서 상생이란 비웃음의 대상이 된지 오래고, 끝없이 추락하는 다수의 서민고통은 임계점을 지나도 그건 각자의 몫으로 관심대상이 아니다. 비단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지나칠 일인가.
소외된 다수는 사회의 위기지수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려서 사회 통합의 제일 저해요소로 작용한다. 그 발단은 소외된 소수의 보호 유무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소외된 소수에 대한 참작과 배려가 없는 사회에서는 갈수록 문제 회피적인 군상들만 교육되고, 실패와 낙오를 피해 가기 위해 엄청난 보이지 않는 사회비용을 지불해야 되는 사회가 건강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할 것이다.
젊었을 때 개인적으로 겪었던 아픔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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