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학년에 올라온 헨리(가명)는 미술치료실 탁자 앞에 앉자마자 마치 거북이가 등껍질로 들어가듯이 두 팔로 얼굴을 감췄다. 헨리는 누구에게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수 없이 혼나고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 헨리의 학교 선생님은 교실에서 이런 헨리의 모습에 미술치료를 권장했다. 미술치료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리 말을 걸어보려 해도 묵묵부답이었다. 미술치료사는 말을 멈추고 근처에 앉아 조용히 찰흙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찰흙을 만지기를 몇 분, 처음으로 두 눈망울이 헨리의 두 팔 사이로 반짝였다. 치료사는 여전히 말없이 찰흙을 굴리고, 누르고 폈다. 헨리의 얼굴을 덮고 있던 손이 찰흙을 향해 뻗더니 어느 순간부터 온 힘을 다해 찰흙을 빚었다. 한참 동안 찰흙을 주먹으로 힘껏 때렸다가 연필로 마구 찌르더니 다시 부드럽게 쓸고 다독였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쓰다듬듯이. 헨리의 굳은 입가에 미소가 스치는 듯 했다. 헨리는 자신이 빚은 찰흙을 치료사에게 말없이 건네주며 무엇인가 말하려는 눈빛으로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30여분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찰흙을 빚는 손으로 헨리는 자기 자신과, 또한 치료사와 소통을 하고 있었다. 마칠 때가 될 무렵 처음으로 헨리가 입을 열었다. “When do I come again(다음에 언제 [미술치료실에] 와요)?” 헨리는 자신의 침묵을 존중할 수 있는 어떤 표현의 돌파구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헨리와의 미술치료는 한 달여 간 일체 침묵 속에서 진행했다. 그러나 헨리의 마음은 눈에 띄게 변해가고 있었다는 것을 확신 할 수 있었다. 말해 주지 않아도, 미술은 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후 헨리는 치료사와 함께 미술을 만드는 과정과 결과물을 통해 자기 자신을 알아가며 억눌렸던 자신감을 키워갔다.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강한 자기 제어력도 자연스레 함께 형성되었다. 학기가 끝날 무렵 헨리의 거북이 등껍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숨지 않아도 자신을 건강하게 표현 할 수 있는 마음을 찾았기 때문이다.
헨리의 경우에 도움이 되려는 말은 마치 딱딱하게 굳어진 땅 위에 비료를 뿌리듯 본인에게 아무런 효과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미술은 물과 같은 작용을 했다. 굳은 땅위에 물이 스며들듯이 비료만으로는 도달하지 못하는 뿌리에 영양분을 가져다주었다. 미술치료는 창의적인 심리치료이기 때문이다. 미술치료는 창의적인 과정에서 나타나는 치료적 요소를 활용하여 언어적인 한계를 넘는다. 그리하여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상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또한, 미술은 표현의 결과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보다 효과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미술치료는 어린이, 청소년 뿐 만 아니라 어른, 노인에게도 큰 도움을 준다. 말로 표현하기 부끄럽거나 표면으로 드러나기 힘든 감정들을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표현력이 매우 부족한 한국 장년층, 노년층에게 특히 효과적이다. 이민가정에 자주 나타나는 보이지 않는 자녀와의 언어적, 문화적 갈등이 미술을 통해 나타냄으로서 가족 간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노인미술치료’라는 분야가 따로 있을 정도로 미술치료가 노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치매예방과 지연에 큰 효과를 준다는 것은 이미 뇌과학자들로부터 밝혀진 바이다.
“나 미술 못해요!”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는 사람들이 많다. Art Therapy에서 ‘Art’라는 단어가 심리치료를 뜻하는 ‘Therapy’라는 단어보다 오히려 부담감을 더 준다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미술치료는 미술을 접하신 경험이나 소질과 무관하다. 미술 표현은 맞거나 틀릴 수 없고 잘하거나 못 할 수도 없다. 미술치료사가 소화할 수 있는 적합한 소재를 내담자에게 소개하기 때문에 ‘미술’이라는 단어에 전혀 부담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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