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옆집에는 가시검은딱새가 살고 있다. 우리 집과 옆집 사이에는 호두나무 한 그루와 키 큰 플라타너스 나무 한 그루가 담장을 대신한다. 두 그루의 나무 사이로 가시검은딱새 가족이 둥지를 부지런히 드나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현달이 호두나무에 걸렸을 때도, 사연 많은 별이 눈가에 이슬이 맺힌 밤에도, 가시검은딱새 가족은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들은 둥지를 나무에 틀지 않고, 왼쪽 벽면에 있는 환기통 안에 틀었다. 그들에게 가족이 늘었는지 요즈음 들어 그 둥지 안은 더욱더 소란스럽다.
나는 가끔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초저녁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현관문 밖 뜰에 앉아서 서늘한 공기를 즐긴다. 모두 잠든 밤에 고요히 나를 성찰하기도 하고, ‘별 헤는 밤’을 외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부스럭부스럭 가시검은딱새들이 적막의 고요를 깰 때면, 나는 호롱불 켜진 내 유년의 고향집 안방으로 가 있곤 한다. 호롱불을 가운데 두고, 고물고물 어린 동생들과 손으로 귀여운 토끼도 만들고 순한 사슴도 만들며 그림자놀이를 한다. 곁에 계시던 할머니가 긴 담뱃대에서 화롯불에 재를 털어 내시며 한마디 하셨다. “대궐 같은 집안에서는 웃음소리가 잘 들리지 않지만, 아이들이 북적대는 가난한 집에서는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는다”며 “그것이 큰 재산”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이 참 진하게 다가온다. 아들, 딸 둘밖에 없는데, 아들은 캘리포니아로 떠나고 딸은 뉴욕으로 가버렸다. 아이들이 없는 집은 빈 둥지 같다.
가시검은딱새 집에도 큰 문제가 생겼다. 그들이 집을 비운 사이, 그들의 가족을 보호하고 있던 아늑한 둥지가 헐려버린 것이다. 그 집주인인 크리스티나 트랜이 집수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부들은 일을 하기 전에 알에서 갓 깨고 나온 듯한 새 새끼 서너 마리와 아직 부화하지 않은 너댓 개의 알을 플라타너스 나무 저쪽 끝머리 풀섶에다 옮겨 두었다. 그런데 어미 새가 새끼들을 찾지 못하는지 계속 환기통 주변에서 푸드덕거린다. 아빠 새인듯한 검은 새도 플라타너스 나뭇가지에 옮겨 앉았다가 다시 환기통 구멍 안을 두리번거린다.
다음날, 나는 우리 집 뒷길을 산책하다가 우리 집 울타리에 앉은 가시 검은 딱새와 눈이 딱 마주쳤다. 가슴이 철렁했다. 건축업을 하는 내가 그 둥지를 헐어버린 범인이기 때문이다.
현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다. 현진이는 10여 년 전에 어른들의 잘못으로 유명을 달리한 아이다. 내가 살고 있던 대전 연구단지 사택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식당에서 일어난 일이다. 현진이네 가족과 몇몇 가족이 모여 그 곳에서 회식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갈 무렵, 다른 아이들은 다 돌아왔는데 6살 된 현진이만 나타나지 않았다. 부모들은 유괴범 소행으로 알고 전국방방곡곡을 돌며 아이를 찾아 나섰다.
“현진이는 똑똑해요. 그냥 놓아만 주세요.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라는 부모들의 간절한 호소가 매일 방송을 타고 흘러나왔다.
한 달 만에 배현진 어린이는 그 식당 하수관에서 까맣게 상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아이들끼리 숨바꼭질을 하다가 현진이가 주차장에 세워진 차 뒤로 숨다가 그만 헐렁한 맨홀을 밟은 것이다. 아이는 하수관으로 빠져버리고 맨홀 뚜껑은 그대로 닫혀 버렸다. 깜깜한 밤에 맨홀 안에 빠졌던 현진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현진이 엄마의 가슴엔 얼마나 큰 피멍과 대못이 박혔을까?
그 식당 바로 옆 대덕초등학교에는 우리 아이도 1학년과 4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충격과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고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어른들의 이기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어린이들의 안전에 위협 받는 일은 어떤 일도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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