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스크바 젊은이들 고층옥상 몰래 오르기 새 문화 성행
한 젊은이가 빌딩외벽의 인터컴 버튼을 계속 눌러댄다, 삐-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풀리면 그는 마치 노련한 도둑처럼 빌딩 속으로 사라진다. 몇분후 지붕위에 올라 선 그는 아득한 눈길로 모스크바 시내를 조용히 응시한다. 14층 꼭대기에 서면 시티센터의 금속 지붕은 어느새 잿빛 공장 굴뚝들, 녹색 섬처럼 떠 있는 공원들의 풍경 속으로 스며들어 버리는 듯하다. 새들의 지저귐, 그리고 저 아래에서 올라오는 자동차 행렬의 희미한 소음. 그는 지붕 끝에 걸터앉아 발아래 펼쳐진 세상을 감상한다.
도심 탐험하는‘루퍼’… 온라인 회원만 3,800명
“단조로운 일상 벗어나 모험과 명상 추구”화제
18세의 드미트리 예르마코프, 그는 요즘 모스크바에서 확산되고 있는 청년 문화의 한 부분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루퍼(roofer)라고 부른다. 모스크바 고층빌딩들에 잠입해 지붕 꼭대기에 오르는 젊은이들이다. 범죄가 목적이 아니라 지붕에 올라 주변 경치를 음미하기 위해서다.
대부분 빌딩은 굳게 잠겨있어 들어가기가 쉽지는 않다. 숫자 패드에서 가장 많이 닳은 숫자의 조합을 연구해 코드를 풀어 들어가기도 하고 배달을 왔다고 둘러대 들어가기도 한다. 재수가 없으면 무단침입으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하지만 큰 곤욕을 겪지는 않는다.
“루핑(지붕 오르기)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하는 예르마코프는 인구 1,000만명이 북적대는 모스크바의 혼잡한 거리에서 멀리 떨어진, 지붕 위의 고독에 만족스러워 한다.
올레그 무라플리요프(17)에게 ‘지붕’은 영적인 것이다. “우린 건물에 어떤 손상도 안 끼칩니다. 파괴가 목적이 아니예요. 부산한 일상을 잠시 떠나 우리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위해 여기 오거든요. 요즘의 젊은이가 냉소적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과 달라요. 우린 전 세대들과 똑같은 영적 가치를 추구합니다”
어쨌든 빌딩에 몰래 들어가는 루핑은 불법이고 또 사적인 일이어서 루퍼 인구의 정확한 측정은 힘들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만 3,800명 가까운 회원이 등록되어있다. 웹사이트와 블로그를 통해 서로의 경험과 사진을 교환하면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꾸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년들로 각계각층의 배경을 가졌지만 이들이 루핑에 끌리는 가장 큰 이유는 뉴에이지 영혼 탐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 유명한 탐험가들 - 콜럼버스, 마젤란, 아문센같은 분들을 닮고 싶습니다”라고 아나 티코마로바는 말한다.
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스카이라인을 엄격히 제한해 온 모스크바엔 고층빌딩이 많지 않다. 18세기 이후 지금까지 모든 건물의 높이는 265피트인 크렘린의 가장 높은 종탑보다 높지 않도록 자제해 온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이제 오일과 천연가스로 축적되는 부로 인해 모스크바의 풍경도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지난주 서있던 빌딩이 다음 주에 사라지는 건 보통이다. 사실 루핑은 몇 년 전부터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모습을 보려는 사람들이 건물 옥상에 오르면서 시작된 것이다.
루핑의 모험을 영혼탐구에서 그치지 않고 돈벌이로 발전시킨 젊은이들도 있다.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온 한 루핑 그룹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모스크바 최고의 지붕 투어’ 상품을 고안했다.
장소에 따라 1인당 13달러부터 80달러까지 받는다. 지붕위의 생일파티에서 지붕위의 웨딩 등 이벤트를 주선하기도 한다. 물론 이 같은 비즈니스 루핑은 건물주의 허가를 받아서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스스로를 ‘루퍼’라고 부르며 고층옥상에서 명상에 잠겨있는 모스크바의 젊은이들.
지붕 오르기가 일상의 중대사가 된 ‘루퍼’들. 오니쪽부터 올레그 무라플리요프, 예프제니 쿠츠네트소프, 예고르 나우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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