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친구 시어머니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이상하게도 올해는 내 주위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
절친한 어르신이 돌아가셨고 어머니의 친구분도 돌아가시더니 가까운 지인의 딸까지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의 상을 당할 때 그 슬픔 역시 크지만 그나마 이생에서의 삶을 열심히 사시다가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는 남아있는 가족들이 그 슬픔에서 그런대로 회복이 빠르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의 느닷없는 죽음 앞에서, 특히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경우에는 남은 가족들의 충격은 이루 상상할 수가 없다. 얼마 전에도 지인의 딸이 젊은 나이에 스스로 이생의 끈을 놓았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그 한을 영원히 부모 가슴에 묻는다는데 장례식장에서 혼절을 거듭하며 울던 지인을 생각하면 내 가슴이 답답하고 저려온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이치라고 성경의 히브리서에 나오지만 죽음이란 단어는 늘 낯이 설고 두렵기조차 한 것이 사실이다.
삶이란 때로는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때도 있고, 때로는 더 이상 삶의 기력을 잃어버릴 정도로 슬픔과 절망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러나 내 나이 50을 넘어서면서 터득한 것은 삶이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신성하며 위대한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은 곧 죽을듯한 절망감과 자괴감에 깊고 긴 밤을 보내지만 내일의 태양은 어김없이 떠오르고, 공이 바닥을 치면 다시 튀어 오르듯이 새로운 날은 분명코 다시 시작된다는 것이다.
가난한 마구장이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노력끝에 유명한 소설가가 된 셔우드 앤더슨도 죽을 때 그의 묘비명에 “위대한 모험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라고 적어놓았다고 한다. 또한 프랑수와 모리악 역시” 인생은 의미 있는 것이다. 행선지가 있으며 가치가 있다” 라고 했듯이 우리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사는 오늘이라 할지라도 눈부신 내일이 내게 주어짐을 받아들이고 살고 싶다. 때론 헤맨다 할지라도 삶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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