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분 사투…‘무서운 뒷심’에 일본 무릎
한국축구 사상 첫 월드컵 축구대회 우승을 일궈낸 태극 소녀들에게 일본과 161분간의 혈투는 태극 소녀들의 강한 정신력의 산물이었다. 일부 선수들은 우승 세리머니가 끝나기도 전에 지칠 대로 지쳐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부상에도 결승전까지 골문을 지킨 수문장 김민아는 승부차기로 우승이 확정된 뒤 그라운드에 털썩 주저앉았고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한쪽에 앉아 동료들의 환호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팀 승리 요인
일본 슈팅 우세 불구
한국‘원샷원킬’주효
이같은 부상투혼 속에서 한국의 우승은 한국 선수들의 볼 결정력과 대처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보여준 경기였다.
역전을 당해도 태극소녀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기회에서 확실하게 마무리 짓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승전에서 후반 12분 만에 수비 조직력이 잠시 흐트러지며 가토 지카에게 추가골을 내줘 다시 리드를 빼앗겼지만, 후반 33분 교체 투입된 이소담(현대정과고)이 그라운드를 밟은 지 1분 만에 그림같은 중거리슛으로 재차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저력을 보여줬다.
한국은 이번 대회 6경기를 치르면서 89개의 슈팅을 날렸다. 59개가 골문 안으로 향한 유효슈팅이었고, 이 중 18개가 골문에 꽂혔다. 유효슈팅 3개 중 하나는 득점으로 연결된 셈이다.
무려 152개의 슈팅(유효슈팅 85개)을 날려 20골을 넣은 준우승팀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의 골 결정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알 수 있다.
한국이 조별리그 이후 상대였던 나이지리아(44%-56%), 스페인(34%-66%), 일본에 볼 점유율에서는 크게 뒤지고도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원샷원킬’의 결정력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또 태극소녀들이 돋보인 것 중 하나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위기 대처 능력이다. 실점하면 곧바로 추가점을 뽑아내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을 막아냈다.
‘트리플 크라운’달성 여민지는 누구
17세 이하(U-17) 여자 축구 대표팀의 주포 여민지(17·함안대산고·사진)가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컵과 득점왕, 최우수선수상까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세계 여자 축구의 `차세대 지존’으로 우뚝 섰다.
이번 대회에서 여민지의 행보는 ‘기록’의 연속이었다.
여민지는 이날 일본과 결승전에서는 골을 넣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치른 6경기에 모두 출전해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과시했다. 남아공과 1차전에 교체 출전해 1골 1도움으로 맹활약하더니 멕시코와 2차전부터는 선발로 나와 2골이나 뽑아냈다.
독일과 3차전에서 잠시 침묵했던 여민지는 나이지리아와 8강전에서는 한국이 수세에 몰릴 때마다 결정적인 득점을 성공시키며 4골을 몰아쳐 한국 선수로 FIFA 대회 한 경기 최다 골 신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지난 22일 스페인과 준결승에서도 분위기를 반전시킨 천금 같은 동점골을 넣고 역전 결승골까지 돕는 활약을 펼쳤다.
여민지는 또 FIFA 등록 기자단 투표로 대회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돌아가는 `골든 볼’까지 수상하며 한국 축구사에 또 다른 이정표를 세웠다.
중학생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오른쪽 무릎 십자 인대를 또다시 다치는 큰 부상으로 자칫 월드컵 참가가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생애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팬의 뇌리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깊이 새겼다.
26일 오전 경남 창원시 명서초등학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단체응원전에서 여민지 선수의 어머니 임수영(맨 오른쪽)씨와 이정은 선수의 어머니 김미자(오른쪽 두 번째)씨, 김나리 선수의 어머니 김효선(왼쪽 두 번째)씨가 환호하고 있다. <연합>
불모지서 핀 희망의 꽃 ‘장하다, 고맙다’
“내 꿈은 크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여자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 또 한국 여자축구가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성인 무대에서도 최정상급에 오르길 바란다. 오늘 승부차기에서 이기는 순간 나는 이 꿈이 곧 실현되리란 걸 느꼈다. 그래서 울었다” FIFA 주최대회에서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일궈내고 최우수 선수가 된 여민지는 이렇게 눈물 섞인 멘트을 달았다. 여민지가 이끈 태극소녀들은 언니 오빠들이 오르지 못했던 정상을 밝아 국민들의 염원에 부응했다. 태극소녀들이 월드컵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태극 소녀들의 우승 마력에 힘을 보탠 건 역시 김치와 된장이었다. 태극 소녀들은 결승을 앞둔 점심시간 된장국과 김치, 감자볶음 등 고향식 반찬으로 맛깔나게 식사를 했고, 이는 결전을 앞둔 소녀들에게 고기로 배를 채운 것보다 몸을 가볍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특히 4강전을 전후해 동이 났던 김치가 결승전을 앞두고 태극 소녀들의 밥상에 다시 올라오면서 선수단의 젓가락을 춤추게 했다는 후문이다.
◎…경기장 한쪽을 차지하고 풍물을 치며 태극 소녀들의 우승에 힘을 보탠 현지 한인 50여명은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치며 우승 드라마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응원전에는 한국에서 건너온 붉은악마들도 가세해 대형 태극기로 경기장 한쪽을 수놓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차세대 골잡이’ 여민지가 대회 기간 쓴 경기일지가 공개돼 화제. 일지에는 매 경기를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마음가짐 등이 17세 소녀의 필체로 꾸밈없이 적혀 있었다.
여민지는 일지를 정성스럽게 쓴 이유를 “경기에서 반성해야 할 점이나 잘못된 점을 적으면서 다음 경기에는 잘 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일본 언론들은 “비통하게 꿈이 깨졌다”며 일본의 패배를 전했다. 교도통신은 “사상 첫 FIFA 주관대회 타이틀을 차지하려던 일본의 희망은 아시아의 라이벌 한국에 패배를 당하면서 비통하게 끝났다”고 보도했고, 닛칸스포츠는 “승부차기에서 4-5로 패해 FIFA 주최의 세계 대회에서 남녀를 통틀어 사상 최초 우승을 하겠다는 꿈이 깨졌다”고 전했다.
20년전 출범 한국 여자대표팀 꼴찌서 정상에
345명에서 21명 뽑아 세계제패 위업
한국 여자 축구가 세계를 제패했다.
FIFA 주최 대회 사상 한국 대표팀의 첫 우승이다. 대회 8골을 기록한 여민지는 골든부트(득점왕)와 골든볼(MVP)을 휩쓸었다.
한국에 여자대표팀이 처음 생긴 것은 20년 전인 지난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그해 창단된 3개 대학팀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았고 같은 해 9월 아시안게임 출전 개막을 앞두고 일본을 상대로 열린 친선경기에서 1-13 패배. 사흘 뒤 같은 장소에서 치른 일본과 두 번째 친선경기에서도 0-5로 졌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는 북한(0-7패), 일본(1-8패), 대만(0-7패), 중국(0-8패)에 잇달아 대패하고 나서 홍콩을 1-0으로 이겨 겨우 A매치 첫 승리를 올리며 6개 팀 중 5위를 차지했다. 한국여자축구연맹이 창립된 것은 2001년의 일이다.
8월 현재 대한축구협회 등록 팀과 선수는 65개 팀 1,450명에 불과하다. 한국 U-17 여자대표팀 선수들은 모두 고등학생인데, 고교 등록 선수는 고작 345명(16개팀) 뿐이다. 345명에서 21명을 뽑아 세계 제패의 위업을 이룬 것이다.
한국은 비록 내년 독일에서 열릴 여자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지만 이번 U-17 여자 월드컵에서 빼어난 기량을 보여준 여민지를 비롯해 U-20 대표팀 주포 지소연 등의 플레이가 절정에 이를 2015년 월드컵 때는 성인 무대에서도 세계적 강호들과 충분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품어볼 만하다.
U-17 여자월드컵 결승에서 일본대표팀과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차지한 한국 선수들이 서로 부둥켜안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U-17 여자월드컵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한국에 패한 일본 선수들이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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