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베스트셀러였던 유주현의 대하소설 ‘운현궁의 봄’에 안동 김씨 세도가였던 영의정 김좌근, 판서 김병기, 이들의 세도 하에 파락호 행세를 하며 때를 기다리다 드디어 막내 개똥이를 고종으로 보내고 욱일승천하던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사랑채의 풍경이 적나라하게 19세기 후반 조선 사회상을 그래픽하게 묘사 해주고 있다.
그들의 사랑채 주변에는 군수나 현감 한자리 하려는 소위 양반 식객들이 언제나 들끓고 있다. 영의정 김좌근의 첩 라합은 막강한 파워를 과시하며 버슬자리를 마치 뜨락의 개에게 음식 던지듯 현감자리를 봇짐을 많이 갖고 온 순서대로 하사한다. 이 사랑채 풍경은 19 세기 후반 조선의 상류층들이 얼마나 썩었는지를 보여 준다. 그 당시 많던 상민 노비들은 어디 갔는지 사실 10%도 안 되던 양반 계층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돈으로 면천한 많은 노비, 중인 상민들이 가짜 족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신분상승과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시대였다.
이조말기 조선에 도착한 서구인들이 본 한양의 모습은 그야말로 미개한 도시였다. 하수구는 넘쳐나 온갖 오물로 냄새가 가득하고 도로와 기간 시설은 낙후하기 짝이 없었다. 엉터리 임용시험 통해 부임한 탐관오리들은 그동안 투자한 돈을 되찾기 위해 갖은 세금으로 지방 민중들을 착취한다. 이렇듯 대다수 민중들이 열악하고 고단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중에 소위 과거급제로 중앙관직에 오른 파워 엘리트라는 이들은 다른 방법을 통해 번 돈으로 99칸 집을 짓고 한세상 음주 가무 풍류를 즐기고 있었다. 물론 그 과거시험에도 부정이 횡행하여 급제자가 뇌물이나 연줄을 통해 사전에 낙점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시점에 이웃 일본에서는 명치유신을 완성하고 막부 제도하의 사무라이들을 몰아낸 의식 있는 젊은 지성들이 영국 미국으로 유학한 후 서구 신문물을 도입하며 그야말로 부국강병에 매진하고 있었다.
오늘 백년이 훨씬 지난 한국이 이런 과거에서 얼마나 멀어 졌는지 물어볼 때가 된 것 같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 일제 때의 고등문관 시험을 답습한 고등고시를 통해 고시방을 통해 단번에 신분상승에 성공한 소위 파워 엘리트들이 이 운현궁의 봄에 나오는 관리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사회경험도 일천하고 민중이 무엇을 먹고 어떤 게 고단한 민중의 일상인지 파악도 안 된 상태로 빠르면 20대 중반에 고위층으로 오르는 자동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이러한 이들이 과거의 그 관리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묻자면 생각에 혼선이 일어난다. 우리는 과거를 너무 빨리 잊고 자신에게 관대하며 역사에서 주는 교훈에 무감각한 시절을 살아 왔고 도덕 불감증에 걸려 있다. 최근 한국사회의 청문회 모습을 통해 나타난 지도층의 부정직함, 그리고 고위층들의 기득권을 이용한 인사부정을 보며 그 ‘운형궁의 봄’을 한번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
폴 오 포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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