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일삼던 양치기 소년에 대한 동화가 생각났다. 정작 늑대가 나타났을 때는 마을 사람들 누구도 소년의 말을 믿어주지 않아 양들이 모두 늑대에게 잡아먹혔다는 그 이야기 속에서 거짓말에 대한 죄 값은 거짓말을 했던 소년 자신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수개월간의 논쟁 끝에 검찰 수사로까지 확대되어 결국 진실임이 밝혀진 가수 타블로의 학력 진위 논란을 보면, 거짓말을 하던 양치기 소년 때문에 모든 양치기들을 불신하게 된 마을 사람들이 성실한 다른 양치기에게 엉뚱하게 분풀이를 해댄 듯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한국에서는 학점 문제로 졸업을 못하고도 이력서에 ‘대졸’이라 쓰는 사람들을 꽤 많이 보았다. 미국에서는 지리적인 거리 때문에 확인이 힘들 것이란 착각 때문인지 허위 학력을 말하는 한인들이 너무 많아 몇년 전 한 미국인 친구는 내게 “이화여대란 학교의 정원이 몇 명이길래 한국여자들은 다 이화여대를 다닌거냐”고 물을 정도였다. 아마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한 학력을 거짓으로 얘기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 생각하는 도덕불감증 환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 2007년, 동국대 교수이자 광주비엔날레의 총책임자였던 신정아의 학력위조 파문으로 한국사회는 큰 열병을 앓았다. 그 덕에 학력을 위조하는 것은 큰 죄가 된다는 사회적 경각심이 생겨난 것은 일면 긍정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열병을 앓고 나면 열꽃이 남게 마련이라고 했던가. 남들보다 화려한 학력을 가진 사람들, 특히 해외 명문대 출신을 보면 불신에 가득 차 무조건적으로 의심하는 무리들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타블로의 경우 명문대 스탠포드를 3년 반만에 석사까지 졸업했으니 그 무리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먹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억울하게 타블로와 그의 가족들이 공격 당하고 있을 때, 열병을 앓게 하고 열꽃까지 남긴, 정작 죄 값을 치러야 할 학력위조 파문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형기를 다 마치지 않고 보석으로 풀려난 신정아는 최근 한 여성지와 억울하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한데 이어 곧 책을 출간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장미희, 최수종, 최화정, 주영훈, 윤석화, 강석 등 학력위조 연예인들은 대부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현재 잘 활동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여러 증거들을 제시하며 진짜임을 증명하던 타블로의 학력을 어떻게든 거짓으로 만들어보려고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신정아 같은 사람이 다시 세상에 나와 그 유명세로 책을 내고 이윤을 얻게 되는 일은 절대 없도록, 가짜 학력으로 이익을 봤던 사람들이 처벌만 안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경제적 이익을 지속하는 일이 없도록 애쓰는 것이 진정 학력위조를 사회에서 퇴출시키며 결과적으로 정의 사회를 구현하는 길이지 않을까.
타블로와 함께 스탠포드에 가서 학위를 확인했던 방송 프로그램을 보니, 모든 것을 위조라고 믿으며 고발까지 했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바로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였다. 이는 경직되고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자신의 상식을 세상 모두의 상식으로 착각할 경우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비극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어떤 집단에서는 ‘상식’인 것이 다른 집단에서는 ‘상식 밖’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과거의 ‘상식’이 오늘은 ‘비상식’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한다. 그래서 모두가 좀 더 유연한 세계관으로 좀 더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된다면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불상사는 더 이상 생기지 않을 테니 말이다.
실비아 김 / 팬콤 전략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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