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노스 캐롤라이나에 온 지 한달 반이 되었다. 내가 사는 그린스보로는 도심에서 벗어난 작은 시다. 차를 타고 달리면 길가에 하늘로 쭉쭉 뻗은 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다. 나무 뒤에 또 다른 사이 길이 나 있고, 집들이 마치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는 것이 신기하다. 사람이 있고 숲이 있는 게 아니라, 숲이 있고 그 안에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숲이 압도적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우리 가족이 왔을 무렵, 10월 초순께부터 가을이 시작되더니 지금은 가을빛이 완전 초절정을 이루고 있다. 나뭇잎이 뿜어내는 빛깔은 한 폭의 유화처럼 그 기교가 참 섬세하다. 어제 학교 끝난 아이들을 픽업해서 집에 오는 길에 아주 기가 막힌 장면을 보았다. 겨울에 내리는 눈은 아닌데 뭔가가 하늘에서 나무사이로 펄펄 날리는 것이 아닌가. 아, 나뭇잎이었다. 바람이 후욱 불면 나무에 달려있던 노랗고 빨간 잎들이 떨어지는 것이 꼭 한겨울 눈이 내리는 장면이었다.
아이들과 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 장면을 눈이 뚫어져라 보았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세리모니였다. 사람이 어떤 공연을 하려면 사람도 필요하고 장비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지만 자연은 아무런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저절로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선사해준다.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는 이 길목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기쁜 쉼표를 찍게 된다. 쌓여 있는 낙엽들을 보며 지난 여름 울창한 잎을 키워내며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을 안겨주었던 저들의 노고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이 땅에 존재하면서 과연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가, 아니면 저 낙엽처럼 누군가에게 기쁨과 묵상꺼리를 주며 사는가? 굳이 남에게 줄 것이 없다면 적어도 남에게 아픔을 주거나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겠다. 세월이 흘러 누군가 날 기억할 때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권소영/ 노스 캐롤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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