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죽은 자가 스틱스 강(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지상과 저승의 경계를 이루는 강)을 건너듯 안개 낀 베니스를 건너가는 장면이 음울한 구스타프 말러의 5번 교향곡의 느린 4악장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루기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원작은 토마스 만(Thomas Mann·1875~1955)의 동명 단편소설이다.
자기통제야말로 한 인간이 발전해 가는 일종의 운명이라 믿고 예술가로서의 명예를 누리며 노년에 접어든 주인공 아셴바하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작품에 ‘열렬한 유희적 흥취’가 결여됐다는 자각과 함께 ‘이국적인 바람’과
‘새로운 피를 솟구치게 할 무엇’을 쫓아 베니스로 향하게 된다. 베니스의 햇살과 바다에 자신의 지친 일상을 느긋하게 의탁하던 중 우연히 만난 미소년 타치오에게 사랑을 느끼고 자신의 작품에서 철저히 배제시켰던 금단의 감각을 일깨우게 되었으나 베니스에서 창궐한 전염병으로 죽음을 맞으면서 예술가로서 성취 못했던 ‘에로스’를 자신의 죽음, 그 ‘타나토스’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언뜻 들으면 ‘열정에 우롱당해 사랑에 빠진 늙은 남자가 가당치도 않은 희망을 품은 채’ 혼란스러워 하는 감정의 때늦은 모험이야기 같다.
그러나 궁극적인 아름다움은 신의 영역이며 정신성이라고 믿던 주인공에게 완전한 아름다움의 비유적 모상이 타지오라는 소년의 모습으로 현현하여 마주치게 되었으니 얼마나 혼란스러웠겠는가? 실제로 1911년 토마스 만은 누이동생의 자살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다스리고, 쇠약해진 몸의 건강도 회복할 겸, 아내와 형까지 동반한 가족여행을 간 베니스에서 자신이 평소에 꿈꾸어오던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가장 근접한 소년을 만나게 되는데 베니스에 머문 열흘 남짓한 기간에 그는 이 소년을 향해 깊이 몰입했었다고 후일 그의 아내는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을 발표할 당시 토마스 만은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괴테에게서 얻었다고 주장하였다. 독일 최고의 고전주의적 지성이었던 괴테가 70세가 넘은 노년에 우연히 만난 10대 소녀 울리케에게 반하여 억제할 수 없는 열정을 품는 것을 보고 ‘디오니소스적인 열정’을 주제로 한 작품을 구상하였다는 것이다.
그 후 평소 존경해 오던 작곡가 말러의 죽음을 접한 후 충격을 받고 베니스를 여행하며 이 소설을 구체적으로 집필하게 되었다고 하니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자신의 열병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말러의 죽음에 대한 애도이자, 지성으로부터 해방되어 열정 속으로 자신을 함몰시킨 괴테를 통한 인간 연구서이다.
늙음과 젊음의 대비, 삶과 죽음의 대립을 테마로 예술가와 시민성, 예술적인 삶, 디오니소스적 도취와 무질서, 절대성의 지향 등을 내포한 이 소설은 예술가의 정체성을 늘 고민한 토마스 만의 다른 소설들과도 일맥상통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감각을 통해서는 정신에 도달할 수 없고, 오직 감각을 완전하게 지배하게 될 때만 성취할 수 있으며 예술이란 그렇게 고양된 정신을 감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주인공은 육체와 정신의 아름다움이 하나로 겹친 미소년 타치오를 통해 우리의 신체성에 깃든 충동적이고, 감각적인 관능들은 정말 극복되고 배제되어야 되는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특히 타지오가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해변에서 완벽한 그리스적 조형미의 포즈를 취하며(사진) 자태를 과시하는 끝 부분을 통해 아름다움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정신성과 동시에 신체성임을 공감하게 한다.
‘예술이란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찬미할 수 있을 뿐 재현할 수는 없다는 것을 통감했다’ -토마스 만-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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