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허리가 36인치에서 32인치로 줄었다. 약 2년 동안의 꾸준한 운동과 다이어트의 결과이다. 나의 일이었으면 오죽 좋으련만… 아무튼 바지 열 벌의 수선을 맡겼다. 연변 아주머니인 린다네 수선점이다. 고쳐 입느니 새로 살까도 싶었지만 불경기엔 지출을 안 하는 것이 돈 버는 일이 아닌가? 왕년의 솜씨를 발휘하면 그 수선비도 안 들겠지만 이젠 눈이 어두워 바느질은 어렵고, 하도 많이 해본 옷 수선이어서 지겹기도 하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한 돈벌이가 얼터레이션(alteration)이었다. 유학생 남편을 뒷바라지 할 때 유대인 세탁소에서 일감을 받아다가 집에서 옷을 고쳐 가계에 보태었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벌어 남편 공부시켰다고 큰소리치며 산다. 오래된 옷이나 낡은 옷을 버리지 않고 수선해서 입는 미국인들의 습관 덕에 돈도 벌고 절약정신을 배우기도 했다. 고치러 보내온 멋진 드레스를 원 없이 입어보기도 하였다.
린다 아줌마는 “일 없습네다”하며 허리 줄이기는 식은 죽 먹기라는 듯 말한다. 요즘 같은 불황엔 옷수선 점이 성업이다. 일이 밀려 일주일 뒤에나 찾아 가란다. 옷 수선해서 번 돈으로 연길에 번듯한 집을 한 채 더 샀다고 자랑한다. 불경기에도 실속 있는 비즈니스가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경기가 좋거나 아니거나 간에 맞지 않는 옷은 고쳐 입어야 한다. 비단 옷 뿐이랴? 고쳐야 할 것은 고쳐가며 살아야 한다.
이번 우기엔 많은 비 때문에 피해를 본 집들이 있었다. 우리 사무실도 작년에 비가 샜건만, 고치지 않고 그냥 두었더니 올해는 더욱 볼만했다. 무려 다섯 군데에 쓰레기통을 받쳐두고 빗물을 받았다. 건축회사의 사무실 광경이 그러하니 유구무언이었다. 날씨도 우중충한데 사무실에 가서도 쓰레기통에 포위되어 일을 보는 격이어서 짜증이 났다.
새해를 맞아 신년 특별새벽기도 주간이었다. 강단 앞엔 커다란 배너가 걸려 있었다. 금년도 우리 교회의 표어인 ‘나를 고치소서’라고 적혀 있다. 나는 무얼 고쳐 달라 간구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신장도 위도 관절도 한 번씩 대공사를 하여 몸은 alteration이 된 듯하다. 그런데 마음은 아직 수선을 못하고 살았구나 생각하니 심란했다. 목사님이 “한 해를 무릎으로 시작합시다” 하는데 눈물마저 났다. 주님이 살짝 내 마음을 터치하신 듯하다. 달력에 바둑판처럼 그어진 365개의 같아 보이는 날도 내가 달라지면 매일이 새로운 날이 되겠구나 비로소 깨우침이 오는 것이다
Alteration 일을 놓으면서 마음도 놓아버리고 살았나보다. 남편이 공부를 마쳤다고, 바라던 직장을 가졌다고, 시민권을 받았다고, 살림이 조금씩 펴진다고 안심하고 살았다. 그 사이 놓쳐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았다. 많이 교만해지고 무척 이기적이 되고 갈수록 물질성향이 되었다. 내가 쓰는 글도 치열함이 줄었다.
초심을 회복하며 사는 마음의 alteration 절실하다. 새해엔 고치고 회복되는 역사가 내 마음에서부터 일어나길 소원한다.
몇 년째 심드렁했던 새해를 맞는 소감이 달라졌다. 이 시의 마음과 같다.
‘이제, 또 다시 삼백예순다섯 개의/새로운 해님과 달님을 공짜로 받을 차례입니다/그 위에 얼마나 더 많은 좋은 것들을 덤으로/받을지 모르는 일입니다/그렇게 잘 살면 되는 일입니다/그 위에 무엇을 더 바라시겠습니까?’
(나태주 시인의 ‘새해 인사’)
이 정 아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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