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기념일에 방학 그리고 남편의 생일까지 한꺼번에 기념하기 위해 라스베거스로 여행을 다녀왔다. 라스베거스를 목적지로 정한 첫째 이유는 쨍한 해가 그리워서였다. 비가 오고, 구름 낀 날씨가 계속되니 마음마저 흐려지는 것 같아 쨍한 해를 보고 싶었다.
낮엔 쨍한 햇빛 속에, 밤엔 화려한 조명 빛 속에 있을 생각을 하니 도착 전부터 살짝 흥분됐다. 그런데 네온사인의 불빛으로 화려하고, 관광객들로 왁자하리라 기대했던 라스베거스가 차분했다. 계절 탓이지 싶었다. 관광객이 없지는 않았지만, 어느 곳이든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여느 때와 다른 느낌의 라스베거스도 나쁘진 않았다. 어차피 여행이란 색다른 경험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일 테니 말이다. 게다가 그곳에서 만난 할머니 두 분, 이번 여행의 가장 값진 경험이었다.
우리가 묵은 호텔엔 아주 커다란 벽난로가 있었는데, 머무는 동안 매일 아침, 할머니 두 분이 뜨개질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얀 머리의 할머니 두 분이 커다란 의자에 폭 파묻혀 뜨개질하시는 모습이 자꾸 시선을 잡아끌었다. 다른 곳에서라면 그리 특별할 일도 아니겠지만 라스베이거스여서 그 느낌이 달랐다. 궁금했다. 여행지에서 그렇게까지 집중해 뜨개질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사람은 아주 오랜 친구 사이라고 했다. 각각 콜로라도와 미시건 에 살고 있는데, 몇 년마다 한 번씩 겨울엔 이렇게 라스베거스에서 만난다 했다. 그리고 남편들이 골프를 치거나 갬블링을 하는 사이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직접 떠서 선물한단다. 올핸 조끼를 뜨고 있는데, 어쩌면 이게 서로에게 마지막 선물이 될 수도 있을까 하며 한코한코 꼼꼼히 뜨고 있다는 두 사람.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쨍한 햇살보다도 화려한 조명보다도 더 밝고 고운 두 분의 미소가 남은 우울한 겨울도 잘 이겨 낼 수 있게 할 것 같다.
박명혜/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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