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늦은 봄, 중국에게 치욕적인 수모를 안겨주는 사건이 워싱턴 DC에서 발생했다. 이 사건은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게 뿐만 아니라 전 중국인들을 분노케 했다. 당시 부시행정부 내 반중국주의자들(소위 네오콘)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워싱턴 방문을 고의적으로 홀대하고 망신을 주었다.
백악관에서의 공식만찬을 거부했으며, 백악관에서 열린 도착 행사에서 중국의 국가가 아닌 대만의 국가로 잘못 언급하는가 하면, 환영행사에선 경찰의 늑장대응으로 시위대의 야유를 받게 하기도 했다.
이에 격분한 후진타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는 참고 또 참아야 한다’고 스스로 되뇌면서 양복차림으로 의자에 꼿꼿이 앉아서 밤을 지새웠다. 2009년 7월말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워싱턴에서 처음 열린 미·중 전략대화는 비로소 G2시대를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자리였다(미국과 중국의 전략대화는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6년부터 미국과 중국이 경제전략대화라는 이름으로 매년 두 차례 개최했다). 이 전략대화는 처음엔 엄청난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이 중국에게 “위안화를 평가절상하라”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던 자리였다. 그러나 2009년 그 대회의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우선, 재무부만 참가하던 자리에 국무부까지 가세했다. 정치, 경제를 아우르는 자리가 되었다. 개막식에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와서 ‘맹자’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했다. ‘산 중에 난 좁은 길도 계속 다니면 길이 되고, 다니지 않으면 막힌다’ 고. 힐러리 클린턴 장관은 ‘사람의 마음이 모이면 태산도 옮길 수 있다’ 라는 중국속담을 인용하면서 중국의 환심을 샀다. 미국은 이 자리에서 위안화 평가절상을 요구하지 않고 ‘중국과 미국은 한배를 탔다’ 라고 중국을 끌어안았다. 바로 그 다음날 중국 관영통신인 신화통신은 중국인민과 전 세계를 향해서 ‘수교 30년 만에 중·미 관계가 새로운 기점에 섰다’ 라고 단호하게 선언을 했다.
지구촌이 미국과 중국의 이런 관계변화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워싱턴을 국빈 방문했다. 워싱턴 앤드류공군기지 활주로에 붉은 카펫을 깔고 ‘조 바이든’ 부통령이 직접 나가서 대기했다. 백악관까지의 길거리가 오성홍기로 붉게 물들었다. 저녁식사를 백악관의 안방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마주했다. 모든 일정과 의전을 중국 측에서 주물렀다.
치과진료를 받을 만큼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던 모욕과 치욕의 워싱턴 방문 만 4년만이다. 이렇게 달라진 상황의 가장 큰 소외감은 당연히 일본으로 갔다. 일본이 세계 최대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을 때, 그리고 미국의 국채를 가장 많이 갖고 있을 때 미국은 항상 일본에 먼저 구애의 손짓을 보냈었다.
그런데 미국 국채가 대부분 중국으로 넘어가자 외교질서가 달라졌다. 중국은 명실상부한 북한의 후견인이다. 중국의 목소리와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6자회담은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 전혀 없다.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장거리 미사일을 쏴도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고 메시지는 형식적으로 그치는 솜방망일 수밖에 없다. 후진타오의 워싱턴 방문을 숨죽이면서 감상한 한국은 참으로 딱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지도자들은 국내정치 권력 싸움에 여념이 없다.
김동석 한인유권자센터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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