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 명문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40년 역사상 최고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해 오고 있는 개혁을 중단해야 하는 위기다. 그 위기는 금년 들어 4명의 학생과 1명의 교수가 자살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일부 학생들과 교수들이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서남표 총장에게 물으면서 불거졌다.
그러나 지난 13일 개교 이래 첫 번째 열린 비상학생 총회에서 학생들은 ‘서 총장의 개혁이 실패가 아니다’라는 쪽으로 입장을 모아 교수들과 의견을 달리했다. 즉 852명이 참석한 비상총회에서 찬성 416명, 반대 317명, 그리고 기권 119명으로 ‘서 총장과 학교 당국의 경쟁위주의 개혁을 실패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 안건이 부결된 것이다. 또 오명 이사장이 긴급 소집한 9일 임시 이사회에서도 서 총장에 대한 사퇴요구를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감정적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접근되어질 수 있는 징조가 보여 다행한 일이다. 그동안 흥분 속에서 객관적으로 사리를 분별하기도 전에 서 총장에게 모든 책임을 몰아붙인 대부분 언론과는 달리 일부 언론은 이 사태를 차근차근히 한국 대학의 문제점들을 역사적 객관적으로 분석하면서 카이스트 문제를 접근함으로써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는 이번 카이스트 사태가 불거진 직접적인 이유는 학생 자살사건에 있으나 이 사건을 부추긴 간접적인 원인은 카이스트 일부 교수들에게 있다고 본다. 카이스트에서의 자살사건은 서 총장이 2007년 등록금 등급제를 실시하기 이전에도 5건이나 있었으며 올 들어 연달아 일어난 4번의 사건 가운데 성적문제로 고민 끝에 자살을 택한 경우는 두 번이다.
서남표 총장은 2007년 첫 임기를 마쳤다. ‘카이스트의 개혁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으면서까지 임기 첫 4년 동안 개혁의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재임용에는 험난한 길이 앞에 놓여 있었다. 일부 교수들이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서 총장은 재임용이 되면서 이른바 차등적 등록금 제도를 도입했다. 공부를 잘하고 정도에 따라 등록금을 전면 면제 받거나 일부 반환해야 하는 제도다. 어느 조직이든 개혁과 변화를 두려워하게 마련이다. 카이스트도 그런 조직의 한 예다.
교수는 높은 수준의 논문을 써야 하고 영어로 강의해야 하는 스트레스 속에서 지내야 한다. 학생도 전액 장학금을 유지하기 위해 공부에 사투를 벌여야 하고 영어 강의를 소화해야 하는 스트레스 속에 산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카이스트는 영국 타임스지의 세계 대학평가에서 2005년 232위로부터 2009년 69위로 올라섰다. 또 공학 정보분야 21위, 자연과학분야 39위를 차지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개혁이 후퇴해서는 한국 대학교육에 전망이 없지 않을까? 개혁은 포기되지 말아야 한다.
허종욱
한동대 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