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을 통해 이미 이야기 하였지만, 이 세상에서 빚을 지지 않고 사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출생부터 어머니의 산고의 빚은 물론, 산파나 의사의 도움으로 삶이 시작된다. 그 빚의 대상은 생존의 필수조건을 제공하는 자연을 비롯해 사회와 국가, 이웃과 친구, 그리고 친지와 가족 등 그야말로 다양하다. 매일의 삶속에서 보고, 만지고, 먹고 마시며, 누리는 모든 것은 빚의 소산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과연 이 당면한 사실을 얼마나 의식하고 매일 삶속에서 반영하며 살아가는지는, 그래서 그 삶이 조금은 겸손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은 사람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굴곡이 제법 심한 인생여정을 되돌아보면 본인은 여러 사람에게 유난히 많은 빚을 지고 살아왔다. 빈 털털이로 결혼해 아내의 내조로 수년간 대학원을 다녔으니 아내에게 진 빚도 만만치 않다. 또한 그 당시에는 영주권만 있어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때라, 등록금 면제뿐만 아니라 생활비(Stipend)까지 보조해준 학교에도 큰 빚을 지었다.
본인은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여섯 번째로 태어났는데, 맨 위의 형님 다음에 연달아 네 명의 딸이 태어난 후 출생했다. 그때만 해도 이유 없이 아들을 선호하던 시절이라, 오랜만에 태어난 아들은 특별대우를 받았고, 누나들의 사랑 가운데 참 버릇없고 염치없는 아이로 자랐다. 동생을 무던히 사랑한 누님들은 나의 철없고 무리한 요구를 잘도 들어주었고, 우리 가정 형편으로는 어림없는 것들도 떼를 써서 꼭 가져야만 했다. 철이 든 후 누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하니 다 네 복이라고 오히려 다독인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치는 동안 그 어둡고 무겁고 황량했던 시절에 가까운 친구들은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저마다 약속이나 한듯 가슴 한편에 쓰라린 아픔이 있던 친구들이라, 그래서인지 서로를 더욱 아끼고 껴안았다. 누님들 출가 후 어머니의 병환이 중하여 도시락도 못 싸갈 때 내 몫까지 두개의 도시락을 학교에 싸온 친구, 자주 닥치는 제사 때나 잔치 때면 그 차린 음식을 먹게 하려고 꼭 나를 불러간 친구, 그리고 등록금이 없어 쩔쩔맬 때 돈을 모아서 등록금을 해결해 준 친구들도 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지금도 이들과 가까이 지내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 사랑의 빚이 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올해는 대학 졸업 40주년 기념 동창 모임이 있어 고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여러 사정으로 방문을 망설이던 중, 본인의 참석을 간절히 원하는 가까운 친구가 우리 부부 비행기표를 구입해 보내 주었다. 과거에 그 친구에게 약간의 호의를 베푼 적이 있는데, 늘 고마워하며 이미 여러 번에 걸쳐 감사의 표시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또 그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말았다. 사도 바울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했는데, 그 친구에게 이 빚을 갚기는 힘들 것 같고, 남에게라도 조금씩 갚는 삶이 되면 좋겠다. 바울의 말처럼 사랑의 빚은 “피차” 져야 되기 때문이다.
예수를 구세주와 삶의 주인으로 믿는 기독교인에게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받을 끔찍한 죄의 형벌을 예수가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으로 단번에 해결해 준 사실이다. 이 빚은 갚을 길이 전혀 없기에 이것을 ‘빚’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진 값없는 선물)이라 부른다. 이 은혜를 뼈 속 깊이 체험했기에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의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 했고,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고백했을 것이다. 나로서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삶이지만, 그래도 이 구원의 은혜에 붙잡혀 산다면 가장 복된 삶임을 인정하며 그렇게 살 수 있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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