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광복군,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께서 돌아가셨다.
벌써 30년도 넘은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려서 내기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분도 학교가 아닌 공직을 맡게 되지 않을까?”
스승이기 이전에 학자로서, 학자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바른 생각과 곧은 신념을 안으로만 삭이고 산다는 것도 현실도피가 아니던가,
개인적으로도 반신반의 했던 것은 제 갈 길을 가는 분들에게 찬사와 박수가 그 명분이라면, 그 생각을 고루 나누고 또 다른 분야에서 봉사하는 것도 명분에 부족함이 없으련만, 그래도 그 올곧은 생각을 끝까지 지켜 내셨다.
시대의 스승, 그 분을 모시고자 하는 삼고초려가 정권이 바뀔 적마다 이어지고 이어지기를 수십 번, 확인된 것만도 장관직부터 총리까지 12차례나 된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왜들 그렇게 정권에 못 끌어 들여서 안달이었고, 결국에는 끝내 그 길을 마다하셨던가.
요즈음 친일파라고 하는 작자들의 자제들은 그 당시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유곽거리를 흐느적거리며 협잡질하는 처세 따위를 기웃거리고 있을 때,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탈출하여 광복군 장교가 됨으로서 민족정신의 꿋꿋함과 정기를 그대로 지녔던 분이기에 정권의 정통성을 국민들로부터 인정받기에 그만한 인물도 썩 드물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정통성과는 상관없는 정권들이 많았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분이 맡은 최고 공직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전두환 정권시절인 80년대 초반 고려대 총장이었다. 사립대학 총장자리는 본연의 직무와 혼동이 될 정도로 학교 재정을 확보해야 하는 절박한 자리여서 정권이나 기업에 부탁을 많이 해야 하는 자리임에도 교수와 교직원의 월급을 동결하면서까지 학교발전을 위한 재정을 확보해도 불만들이 없었던 것은 다음의 일화 하나로 설명되고도 남을 것이다.
정권이 맘먹은 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시기에 정기 연고전을 취소케 한 것을 두고 철야시위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밤새워 경찰의 건물진입을 막아서 학생을 보호하는 총장, 총학생회를 해체하고 학생회 간부를 자르라는 정권에 저항하다 본인이 먼저 잘린다. 다른 대학들은 학생을 자르고….
1985년 봄, 총장 물러나지 말라는 데모를 하는 풍경을 상상이나 가능한가. 지성의 요람인 대학, 총장의 사표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던져 주신분이다.
정권에 밉보여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그 자리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았던 모습을 오늘 날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분이 우리 세계와 작별을 하였다.
학문의 길을 오직 책속에서만 찾는다는 것도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학문하는 학자들이 어떻게 하면 권력자의 아류(아류)가 되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들을 그렇게도 쉽게 보일 수 있는 것인가,
요즈음에 흔해빠진 폴리 프로페서(Politics와 Professor의 합성어로 현실 정치 참여에 관심을 보이는 교수)들에게는 김준엽 전 고대총장의 삶이 그저 답답하게만 느껴질지도 모른다.
수없이 많은 지성들이 국립 서울대 총장이 누구였는지를 기억해 내는 것이 쉽지 않고, 어느 누가 교육부 장관을 했었는지 모를지라도 대학의 총장은 이런 분이래야 된다고 알고 있는 그 분을 우리는 쉽게 잊지 않을 것이다.
강창구
워싱턴 사사세 회원,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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