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있으면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미국에 온 지 5년 만의 일이다.
우리에겐 아직 영주권도 없고 미래는 불투명 하지만 그래도 아이의 졸업은 마냥 신기하고 흥분되는 일이다. 아이가 졸업한다는 생각을 하니 어쩔 수 없이 지나온 날들이 떠오른다. 아이의 출생부터 지금까지의 성장과정, 내게는 그 모든 순간순간들이 마치 한 편의 거대한 휴먼다큐멘터리인 것 같아 감동스러울 따름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똑같이 경험하고 공감하는 일이겠지만.
아이는 요즘 학기말의 마지막 며칠을 이런 저런 행사와 기말시험으로 바쁘게 보내고 있다. 어제는 아이의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주최하는 학년말 행사에 갔었는데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서로 나누고 선생님이 일일이 학생들에게 감사장을 나누어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격식 없이 소박하게 치러진 행사였고 그래서인지 시종일관 웃음과 유머가 끊이지 않았다.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도 아이들이 그간 함께했던 시간들을 진정으로 아쉬워하는 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떠나가는 졸업반 학생들을 위해서 선생님이 작은 선물을 일일이 나누어 주시며 작별인사를 할 때 아이들은 낮은 탄성을 보내며 선배들에 대한 아쉬움과 고마움을 표현해주었다. 함께 있던 내게도 그들의 공감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져 순간 마음이 얼얼해졌다. 행사 후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학교 건물을 바라보았다. 아, 이제는 정말 학교를 떠나는 구나, 하는 감회가 아이의 눈에 담겨 있었다.
살다보면 그간의 삶을 정리하고 매듭짓는 어느 한 시기를 맞이한다. 입학이나 졸업, 취직과 이사, 때로는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사람과 환경을 만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삶의 장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 아이를 보면서 어쩌면 아이에겐 지금이 인생의 가장 큰 첫 관문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각별해 진다.
아이는 인근의 대학으로 진학할 예정이지만 졸업과 입학, 이런 순서를 정해진 코스처럼 따라 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여건이 되면 여행을 떠나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이 넓고 크고 다양하다는 것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것도 큰 공부가 될 것이다. 그러니 늘 여유를 가지고 시야를 넓게 가지면 좋겠다. 이것은 그렇게 살아 보지 못했던 나의 소망이기도 하기에 아이는 꼭 체험했으면 하는 엄마로서의 바람이기도 하다. 물론 나의 염원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정해진 틀 속에서 안주하며 살기보다는 생의 이면을 두루 경험하고 그럼으로써 인간에 대한 두터운 신뢰와 타인에 대한 이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계속 진화하기를 바란다.
어제는 아이가 받아온 졸업식 의상을 보며 그걸 입게 될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며칠 있으면 멋있는 가운과 학사모를 쓰고 졸업식에 참석할 아들에게 마음 다해 축원을 보낸다. 한껏 포부를 펼치고 부디 자신이 좋아하고 헌신할 수 있는 무엇을 찾아 자신만의 여정을 이제부터 진지하게 시작하게 되기를. 아이가 앞으로 헤쳐 나가고 살아가야 할 세상이 내가 살아온 세상보다 더 진보되고 더 살기 좋은 곳이 되리라는 전망을 가지기엔 -특히 환경면에서- 솔직히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아이에겐 희망을 가지라고, 그래야만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희망이 자신 안에 머무르지 않고 주위로 확산되어 궁극적으로는 자신과 타인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희구를 아이와 나누고 싶어진다. 무엇보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늘 삶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Y야,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권태은 /훼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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