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생명은 믿음이다. 그런데 이 믿음은 기본적으로 경험적 이성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생명과 죽음, 죽음 이후의 세계, 삶의 본분과 의미, 영적인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특히 기독교의 믿음은 인간의 인식으로 포착되지 않는 하나님의 행위와 말씀이 지시하는 세계와 맞닿아 있다.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현실을 넘어선 현실, 때가 되면 성취될 종말론적 현실을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다.
그래서 믿음은 신비이고 은총이다. 그러나 믿음이 신비와 은총의 영역에 속한 것이기에 믿음의 세계 앞에서 이성의 역할은 한계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는 법. 그런데 이성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점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우매에 빠진다.
우매에 빠진 믿음이 곧 신념이다. 믿음과 신념은 본래 그 뿌리와 속성이 전혀 다르다. 신념이 인간의 차원이라면 믿음은 신(神)의 차원이다. 신념이 자기 중심적이라면 믿음은 신과의 관계 중심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과 신념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것은 어쩌면 신의 차원에 속한 믿음을 인간의 차원인 신념으로 바꾸어 놓아야 인간의 의지대로 믿음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인간 밑바닥의 이기적 욕망(?) 때문이지도 모른다.
인간은 모름에 대한 호기심과 동시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간은 이 호기심과 두려움 사이에서 크게 고민하기를 주저하며 그저 할 수만 있으면 기존의 앎을 고집하려 한다. 다양한 경험을 최대한 기존의 인식 체계에 끼워 맞추려 한다. 간증이 무분별하게 난무하는 이유다. 자신의 인식체계를 반복해서 확인하려 하고, 더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으려 한다.
이런 일련의 내적인 과정을 신념화 작업이라 할 수 있는데, 사람이 반복되는 검증과 확인을 통해 자신의 인식체계를 강화하는 일련의 신념화를 하는 이유는 신념의 성을 높이 쌓아야만 그 안에서 종교적,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신념화 작업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많은 교회는 이런 신념화를 강화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각종 예배와 기도회, 성경 공부와 소그룹 모임을 통해 하는 반복. 내가 보기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앵무새와 같다. 가르쳐준 몇 마디만 지겹게 읊조리는,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모든 의문은 강화의 길을 가로막는 최악의 걸림돌이며 불신의 죄악으로 정죄되고 내몰린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위로부터 주어진 은총도 아니고 신비도 아니다.
믿음은 관계를 잇는 사다리이다.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 하늘과 땅의 관계, 나와 너의 관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잇는 사다리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때문에 관계가 깨어지는가? 그런데도 그것은 믿음 때문에 마땅히 지불해야 할 희생인양, 믿음은 심화되어야지 강화되어서는 안 된다. 믿음을 강화하려 드는 것은 믿음을 해치는 것이다. 믿음을 강화하면 할수록 완고해지고 굳어져 급기야는 자기 독선과 아집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심화되어야 한다. 신에게까지! 그대여, 믿기는 믿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