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한해도 반환점을 돌았다. 달력의 반환점 즈음은 언제나 여름이다.
여름은 역동적인 계절이긴 하지만 마음은 뜻 모를 초조로움이 있다. 여름은 밖으로 도는 계절이기에 침잠을 거부하고 짐짓 고독을 멀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겨울보다 더 춥고 봄이나 가을보다 더 낮게 흐르는 음악을 이 여름에 듣고 싶다.
그런 까닭인지 얼마 전에는 생경한 노래인 ‘조율’을 들으며 그 질감에 빠지기도 했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 정다웠던 시냇물이 검게 검게 바다로 가고/ 드높았던 파란 하늘 뿌옇게 뿌옇게 보이질 않으니/ 마지막 가꾸었던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끝이 나는 건 아닌지/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
해가 중천에 뜨기도 전에 벌써 여름의 오전은 권태에 빠져버리고 이어지는 끈적거림과 이글거리는 한 낮은 자칫 무력한 존재를 향한 조율의 필요를 느낀다. 여름의 새벽은 불면이기 일쑤다. 그때마다 둔탁한 단조의 굉음을 영혼으로 들으며 지금까지 달려온 한해의 반을 돌아본다. 그리고 다시 미래의 반 조각을 응시하면서 때의 어긋남을 고쳐 매만진다.
별로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사람과 만나 커피를 마셨다. 우연히 전화번호를 교환한지 반년이 훨씬 지났는데 그래도 번호가 적힌 메모지가 발견 된 김에 전화를 했다. 우리는 파네라(Panera)에서 만나 커피를 마셨다. 그 역시 나와 비슷한 연배였지만 의외로 삶에 애착이 없음을 쉽게 말하며 주어진 인생의 무료함을 토로했다. 나는 그의 심중을 읽었다. 그는 일탈(逸脫)을 꿈꾸는 늙은 청춘이었다.
나는 그와 한 시간 반을 함께 하며 한 시간 십 분 동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참으로 인내가 필요한 시간이었지만 그러나 우리의 대화는 순조롭게 끝났고 그는 처음보다 많이 밝아진 얼굴로 떠났다. 그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수색대에서 보낸 군대 이야기가 주종을 이뤘다.
아, 그는 그 3년의 추억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 인생이 지루했던 것인가. 그는 나와의 짧은 만남으로 이 여름을 잘 보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 누구랴. 삶이 충실하게 다져지기만 한 사람이. 오케스트라의 꽃은 지휘자와 바이올린, 드럼이나 트럼펫만은 아니다. 피콜로가 오케스트라의 핵심일 수도 있다. 심벌은 어떤가.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던가. “세상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사랑을 잃는 비극과 사랑을 얻는 비극이 그것이다.” 역설이지만 진리다. 그러함에도 세상은 사랑 때문에 해가 뜨고 해가 진다. 사랑을 향해 돌진하다가 미로에 빠져 추락한다. 그것은 사랑이 갖고 있는 무한함 때문이다. 여름은 그 사랑의 의외성을 발견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사랑은 소유할 수 없는 실체임에도 여름은 그 실체를 종종 가졌다는 착각을 준다. 나신(裸身)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객관성을 지녀야 무너지지 않는다. 그것이 무너질 때의 처절한 아픔을 여름은 교훈한다. 그 굴절의 아픔을 통과하며 인간은 여름에 성숙할 수 있다. 그런 뜻으로 보면 하나님은 계절마다 은혜를 분배하신 셈이다.
여름은 게으르면서 탐욕스런 성취를 추구할 수 있다. 열 권의 책을 가까이하고 싶지만 한 권의 책도 보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면 인간이 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면 신이 된다는 빛바랜 경구를 기억하며 내가 지금 무슨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생각하며 이 여름을 지날 일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