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자취생활’은 오랜 로망의 대상이었다. 누구의 간섭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니, 그야말로 달콤한 자유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문이 아닌가. 2011년 여름, 나는 미국의 버클리에서 홀로 이 문을 열게 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의 새로운 집 문을 여는 순간, 상쾌한 자유의 바람이 내 몸을 휘감았다. 행복감에 젖어 바닥을 뒹굴며 좋아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옆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렇다. 난 혼자가 아니었다. 쎄한 느낌에 쳐다본 그 곳엔 까맣고 오동통한, 거대 왕거미가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던 것!
순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자취생활을 결정하고부터 주변에서 “되게 외로울 꺼야” 또는 “밤에 혼자 잠들 때 무서울걸?” 등 많은 경고 아닌 경고들을 익히 들어 오던 터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놓고 있던 나였지만 ‘갑작스레 벌레와 마주하게 된다면?’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꺄 아빠!”하며 부리나케 아빠를 찾았겠지만 아무도 달려와주지 않는 이 곳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거미가 나를 향해 세발자국 정도 내딛는 그 짧은 대치의 시간,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은 하나였다. 이 거미는 결국 내가 직접 잡아야 하는 것이다! 마음 굳게 먹고 달달 떨리는 손으로 휴지를 뭉텅이로 뽑았다. 거미를 향해 비장하게 한걸음씩 다가가자 거미는 내 움직임을 눈치챘는지 더 빨리 움직였다. 그러나 이미 과감해진 나는 빛의 속도로 휴지 뭉치를 거미 몸 위로 눌러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다 끝났다는 생각에 나는 힘이 빠져 휴지를 손에서 놓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유유히 휴지밑을 빠져나오는 오동통 거미! 아아... 이것은 카펫의 치명적 단점이었다. 거미는 푹신한 카펫밑으로 잠시 내려갔다가 올라왔을 뿐이었다. 예상치 못한 거미의 재등장에 소리를 질러대며 재빨리 휴지로 거미를 다시 누르고 두꺼운 책까지 올려 놓은 후에야 상황은 완전 종료 되었다. 몇 분 뒤 조심스레 휴지를 들었을 때 다행히, 그리고 드디어 거미는 온전히 찌그러진 상태였다.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요란스런 자취 신고식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오동통 왕거미와 함께 자취생활에 대한 내 오랜 로망 역시 함께 찌그러진 후였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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