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의 여인들(에우리피데스 이후)’에 출연하는 시티 극단의 배우들. / 고대 그리스 극장의 원형을 따라 지어진 ‘바바라 로렌스 플레슈만 디어터’.

그리스 로마시대의 유물과 문화가 전시 보존되고 있는 말리부 언덕의 게티 빌라(Getty Villa)는 매년 가을 그리스 고전비극이나 희극을 재연하는 연극을 상연한다.

고대 야외극장의 원형을 따라 지어진 ‘바바라 로렌스 플레슈만 디어터’(Barbara and Lawrence Fleischman Theater)의 야외무대는 2,400년 전 지중해 도시국가에서 탄생한 비극의 현장이 되어 컴퓨터 시대 청중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2006년 리모델링을 마치고 화려하게 복원된 게티 빌라가 매년 9월 마련해온 이 무대에서는 그동안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아리스토파네스의 ‘평화’,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 에우리피데스의 ‘히폴리토스’ 등이 공연됐다.

고전 비극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갈수록 인기와 명성이 높아지고 있는 게티 빌라 야외극장 프로덕션의 올해 상연작품은 ‘트로이의 여인들: 에우리피데스 이후’(Trojan Women: After Euripides). 오는 9월8일부터 10월1일까지 매주 목·금·토요일 오후 8시에 공연된다.

에우리피데스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시인 중 하나로 ‘트로이의 여인들’ 외에 ‘안드로마케’ ‘엘렉트라’ ‘헤라클레스’ ‘메데아’ ‘이피게니아’ 등 트로이 전쟁의 후일담을 다룬 비극들을 많이 썼으며 총 18편의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트로이 여인들’은 전쟁에서 패배한 후 그리스 군에 짓밟히는 트로이 왕궁 여인들의 슬픈 운명을 다룬 작품으로, 남편들이 전장에서 죽고 자녀들은 처참하게 살해되며 여자들은 적군의 노예로 끌려가는 최악의 상황에서 절망과 슬픔의 극치를 노래하고 있다.

전쟁에서 무고하게 희생되는 여자들과 아이들, 즉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대에 들어와 이 작품은 시대 상황을 녹인 반전 드라마로 재탄생하곤 한다. 한국서도 수년 전 종군 위안부의 운명과 교차시킨 ‘트로이의 여인들’을 공연한 바 있다.

이번에 게티 빌라 극장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뉴욕의 유명한 시티 극단(SITI Company)이 게티의 위촉으로 제작한 전혀 새로운 ‘트로이 여인들’이다. 제목에 ‘에우리피데스 이후’를 붙인 이유도 연출자(앤 보가트)와 극작가(조슬린 클라크)가 고전 비극의 뼈대만 남겨놓고 21세기 관객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도록 새로운 내용과 인물해석으로 접근했기 때문.

원작의 여인들 코러스는 없애고 새로운 배역 2명을 만들어 넣는 등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과거와 미래를 택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서 각 개인의 선택을 생각해보게 만들고 있다.

중간휴식 없이 90분 공연. 티켓은 38~42달러이며 퍼스트 캄 퍼스트 서브로 앉는다. 온라인 예약이나 전화 (310)440-7300로 구입할 수 있으며 티켓 구입자는 주차 예약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www.getty.edu

게티 빌라는 또한 공연 시작 전 관객들이 저녁식사를 할 수 있도록 두 종류의 다이닝 메뉴를 서브하고 있다. 야외극장에서도 음식을 먹고 마실 수 있지만 할리웃 보울처럼 밖에서 가져갈 수는 없고 게티 빌라 내 카페나 식당, 커피샵에서 구입한 것을 먹을 수 있다.


<정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