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자의 꿈은 편집국장을 한번 해보는 것이다. 꼭 글 잘 쓰는 민완기자가 편집국장이 되는 건 아니다. 필력보다는 비즈니스와 매니지먼트의 안목이 중요하다. 돈이 되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편집국장은 영어로 ‘Managing Editor’(관리 편집자)이다.
교수는 대학 총장이 되는 게 꿈일는지 모르지만, 박학다식한 명강의 교수가 꼭 총장이 되지는 않는다. 장학금, 학교 발전기금 등 돈을 많이 따오는 수완가가 총장이 된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요즘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달변가나 권모술수가 뛰어나고 파벌조직에 능란한 정치꾼이 꼭 대통령이 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정치경륜은 일천해도 국민을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해줄 실용주의적 비전을 가진 참신한 인물이 국가 지도자로 뽑힌다.
MB는 한국의 역대 대통령 10명 중 첫 실용주의 대통령이다. 그는 초대 대통령처럼 독립운동도, 다른 두 선배처럼 민주투쟁도 하지 않았다. 시골에서 배를 곯으며 자랐고 시장바닥에서 청소로 아르바이트하며 대학을 나왔다. 현대건설에 입사해 10년 만에 사장이 될 정도로 경영관리 능력이 출중했다. 서울시장 재직시절 불가능해 보였던 청계천 복원사업을 뚝심으로 해냈다. 그 청계천 물에 송사리가 노니는 모습을 필자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이념 앞엔 실용주의도 속수무책이다. MB는 50% 가까운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좌파들로부터 ‘독재자’로 줄곧 매도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과 고 김대중 대통령의 독설이 발단이었다. DJ는 6·15 남북정상회담 9주년(2009년) 연설에서 자신의 햇볕정책을 차버린 MB를 독재자로 지칭하고는 참석자들에게 “마음으로부터 피맺힌 심정으로 말한다. 행동하는 양심이 돼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고 말했다.
MB가 최근 취임 후 처음으로 시애틀을 방문하고 한인사회 인사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필자에겐 그가 과연 두 선배처럼 독재자인지 여부를 가늠할 좋은 기회였다. 박통(박정희)과 땡전(전두환)의 철권정치를 권부의 옆 자락에서 20년 가까이 피부로 겪은 필자는 독재자가 뭔지 잘 안다. 김동길 박사는 MB의 ‘관상’만 보고 독재자 타입이 아니라고 말했다.
필자가 보기에도 MB는 독재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치인답지도 않았다. 관리나 학자 같이 보였다. 피곤한 탓인지 걸음걸이도 약간 비척거렸고, 말소리도 조용했다. 연설에 박진감이나 흡인력도 없었고 극히 설명적이고 설득적이었다. 원고나 메모가 없는 즉석 연설이었지만 한미 FTA 협정, 수출 등 경제문제를 언급할 때는 관련 수치를 일일이 나열했다.
MB는 이날 연설의 상당 부분을 빈민국 원조문제에 할애했다. 어렸을 때 미국 구호품 헌 옷을 얻어 입으려고 줄 섰었던 경험담을 털어놓은 그는 “가난을 겪은 한국의 원조는 본래 부자였던 나라들의 원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한국인은 원조 받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6·25 참전우방인 빈민국 에티오피아를 방문했을 때 이틀간 팔을 걷어붙이고 봉사활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런 심성으로는 독재자가 되기 어렵다.
MB가 독재자이든, 아니든 필자는 대수롭지 않다. 하지만 그를 독재자로 치부하는 것은 군부독재 시절의 수많은 민주운동 희생자들을 욕되게 하는 행위다. 그들을 촛불시위자들과 동격으로 보기 때문이다. 군사독재의 가장 큰 피해자인 DJ가 MB를 독재자로 매도했다는 말을 지하의 박통이 듣는다면 크게 안도할 것 같다. MB와 동격의 독재자가 되기 때문이다.
MB가 독재자가 못 된다는 증거는 또 있다. 인터넷 채팅방에 가보라. MB는 ‘명박’이 아니라 ‘쥐박’이다.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모두 멀쩡하다. 만약 북한 사람들이 김정일을 ‘뽀글’이라고 불렀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그게 진짜 독재다.
윤여춘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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