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보름달이 조금씩 기울고, 청명한 가을 하늘과 코스모스가 살랑대는 천고마비의 계절도 막바지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나라에 가신 부모님을 추모하며 이곳의 형제자매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살아생전에 효도를 다 못한 아쉬움,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슬픔 등 만감이 교차되었지만 바쁜 미국 생활에서 한자리에 함께 한다는 것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쉽지가 않다.
난 9월이면 늘 마음속에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는 날을 계수하며 지내곤 한다.
어쩌면 아버지께서도 9월 어느 날, 어머니도 9월의 어느 날, 이 세상을 떠나신 날이기에 부모님의 기일은 항상 가슴앓이로 나에게 다가오고 부모님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곤한다.
누가 말하기를 부모님은 성직자라고 했다. 그 이유는 생명을 다루며 보수도 없고 기한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최초의 스승이기도 하다. 어느 교육보다도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정의 선생이시다. 더 감사할 일은 하나님이 부모님을 통해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부모님의 추모 예배는 고국에 계신 오빠가 30여년을 넘게 드렸다.
장남의 임무를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이행하던 오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니 정말 우리 형제들은 한 팔을 잃은 고아가 되여 부모를 잃었을 때보다 더 큰 슬픔을 안고 지낸다.
더욱이 부모님의 묘소를 정성껏 모셨던 오빠의 효성을 이제 누가 대신 할 것인가. 오빠가 건강할 때 묘지 이장과 납골당에 모시자는 계획이 오고 갔으나, 그 막중한 임무를 우리에게 말 한마디 유언도 없이 홀연히 떠나간 지금에서야 오빠와 새 언니의 수고와 고마움을 깨닫게 되니 말이다.
이제는 미국에서 부모님의 추모 예배를 드리기로 형제들과 합의하고 맏딸이 첫 추모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형제들과 정답게 나눌 만찬도 준비하면서 문득 생각나는 아버지께서 생전에 즐겨 잡수시던 동그란 녹두전도 만들어 놓고, 어머니께서 좋아하셨던 팥고물을 만들어 얹어 2층 시루떡도 쪄놓았다.
부모님이 마치 곁에 계신 양 혼자서 신나 “아버지 이 녹두전 잡수세요. 엄마 이 떡 잡수세요. 정말 맛있죠?” 하며 생전 처음으로 부모님을 추모하는 날, 난 철없는 딸이 재롱을 떨듯 흥분 속에 이런 저런 음식으로 형제들과 나눌 정성들인 밥상을 차려놓았다.
추모 예배를 마치고 부모님 생전의 모습을 돌아가며 회고하는 우리 형제들. 우리 세대 어머니는 다 비슷하겠지만 한 번도 호강해보지 못하고 평생 고생만하고 58세의 젊은 시절을 마감하고 돌아가신 어머니. 그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은 죽어도 잊히지 않을 어머니의 사랑에 눈물 바람은 쉽게 가시지가 않았다.
솔직히 70세에 돌아가신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더욱 그립고 아무리 효를 다했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그 끔찍한(헌신적) 자식 사랑에 보답할 길이 없어 절절한 아픔이 남는다.
모든 것이 아쉽고 후회스러운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부모님을 추모하는 날, 우리 형제자매는 더 없는 사랑과 우애로 남은 삶을 멋지게 살아가기를 다짐한 시간이기도 했다. 떠남과 만남은 언제나 상존하지만 떠날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원죄(?)가 너무 안타깝다.
유설자
워싱턴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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