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나이와 정비례 속도로 달린다더니 해가 지날수록 가속이 붙는다.
아이들 뒷바라지하던 시절에는 정신없이 바쁘게 사느라 세월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그러나 어느덧 자식들이 하나 둘 제각기 분가해 나가고 나니 일손도 줄어 여유를 즐기기도 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젊어서 보다 세월이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자 타계하신 시어머님이 불현 듯 생각이 났다. 햇수를 따져보니 세상을 떠나신지 30년이 흘러 어머님의 생전 나이보다 내가 한 해를 더 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제부터 나의 여생은 덤이 되는 셈인가.
시어머님 세대의 어른들에게 “백수 하십시오.”라고 축원 드리면 무슨 욕먹을 소릴 하느냐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인간의 수명이 100세를 기대할 수 있다하니 계절로 치면 나는 가을초입새에 들어서 있다.
가을은 수확과 월동을 채비하는 계절이다. 사람마다 지난 봄여름을 얼마만큼 열심히 살았느냐에 따라 제각기 걷어 드릴 수 있는 결실의 몫이 다를 것이다.
결혼 초에 친구와 점집에 간 적이 있었다. 시어머님 생년월시를 넣으니 90세까지 장수하신다고 점쟁이가 말했다. 하지만 하필 그 해에 유방암이 발병하여 수술과 방사선치료를 받느라 고생 하시다가 6년 만에 돌아가셨다.
아들 하나 바라보며 온갖 고난을 겪으셨는데 자식의 효도를 제대로 누려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뜨셨다. 길지 않은 세월을 어머님과 함께 살아가며 사소한 일로 마음고생을 시켜드린 듯싶어 후회스럽다.
반 고흐의 태양은 노란색이 유난스럽다.
고향을 등지고 남하하여 전쟁의 와중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신 시어머님과 망아지처럼 뛰놀던 철부지 며느리의 세상사 읽는 시각이 매양 같을 리가 없었다. 어머님이 까맣다고 하시면 나는 곧이곧대로 하얀색이라고 우겼다.
나에게는 분명 붉은 해가 반 고흐에게는 노랗게 보였듯이 내 눈에 흰색이 어머니께는 까만색일 수도 있다는 시각과 인식의 차이를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사돈이 오이를 꼭지부터 먹어도 잠자코 그 집안풍속을 따르라던 친정어머니의 말씀이 새삼스럽다. 가는 세월, 오는 백발이라고 했다. 머리숱에 서릿발이 내려앉는 인생의 가을에 들어서서야 내가 늦깎이 철이 드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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