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임에서 생긴 일이다. 점심 시간에 늦는 바람에 긴 줄 맨 꽁지에 붙어 섰다. 부지런히 식사 당번들이 움직이고 있었으나 우리가 선 두 줄은 앞으로 나가는 속도가 느리기만 했다.
소홀히 했던 아침 식사를 뉘우치며 오늘의 경험을 교훈 삼아 이후로는 매끼니 때마다 필요한 만큼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고 뉘우치며 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뒤에도 내 앞줄만큼이나 긴 줄이 차례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다들 기다리는 사정은 같은 모양으로 피곤해 마른 갈대가 된 사정이다. 줄을 서서 서로가 같은 형편에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다. 누구도 나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서 있다. 서로가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워진 불문율의 제도이다. 아무리 바빠도 줄은 그 당시의 법으로 나중에 온 사람이 급하다고 사람들 앞에 서거나 중간에 끼어들 수 없다.
내 줄 앞 중간에 서 있던 친구가 늦게 와 줄 옆으로 왔다갔다하며 어디 중간에 끼어들 자리를 찾고 있는 자기 친구를 큰소리로 (이리와) 부르더니 자기 앞에 세운다.
마음이 좀 불편했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순간으로 곧 잊어버렸다.
식사를 받아 가는 사람들은 부지런히 신나는 표정으로 자기 자리로 찾아간다. 식사 당번은 밥을 퍼주느라 바쁘고 들고 가는 사람은 자기 자리를 찾아가느라 바쁘다. 언제나 식사시간은 즐겁고 바쁜 시간이다.
잠시 후 숨을 헐떡이며 우리 줄 옆에서 왔다갔다 공간을 찾는 사람을 아까 그 친구가 팔로 잡아끌어 또 자기 앞에 끼워 세운다. 급할 때는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양해를 얻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때 누군가 약간 미안한 말투로 “순서대로 섭시다.” 아무런 양해도 없이 하나도 아닌 둘을 무작정 끼워 넣는 일은 뒤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짜증이 나게 한다.
“저울에 달고 자로 재네.” 슬기로운 우리 조상들 전언에 사람은 말의 열매로 복 받는다고 했는데 양해를 얻는 대화에서는 얼음이 물이 되어 녹는 것 같이 해결책은 있을 것이고 힘들지만 조금은 양보할 마음에 짬이 생길 것이다.
화장실에 가니 짧은 줄이지만 두 줄, 석 줄 만원이다. 내가 뒤에 붙어 서자 잠시 후 누가, “아이쿠, 나 급한데 먼저 좀 들어가게 해 주세요. 누구든지 좀 양보해주세요.” 체면 불구하고 큰 소리로 외쳐 댄다. 그러자 줄 앞에 섰든 사람들이 “이리 오세요, 이리 오세요” 하며 서로 양보하겠다고 나선다.
또 다른 사람은 “아무 데서나 먼저 나오는 대로 들어가세요.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이 바닥에다 실례를 하면 우리만 손해지 뭐” 하자 때 아닌 웃음보가 터졌다.
마침 저 안쪽에서 누가 나오자 지체 없이 급한 사람이 무작정 뛰어 들어 갔다. 문제가 없다.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웠어요.” 우리는 한 사람에게 양보했는데 급한 불을 끄고 가는 그 사람은 줄서 있는 모두에게 큰 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가벼운 걸음으로 갔다.
가끔 양보하는 일이 즐거울 때도 있다.
하순득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