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화소식으로 회장님의 급작스런 비보를 듣고 “청천벽력이란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거죠?”라고 여쭈면 “그려!”하고 대답하실 것 같은 회장님과의 인연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90년대 초 저를 찾아오신 회장님은 자그마한 키에 양손을 뒷짐 지시고 조곤조곤 말씀 하시는 게 어쩌면 아버지 같고 오빠 같은 느낌으로 다가와 우리는 당장 회장, 부회장 이란 팀을 이루어 13년 만에 경선으로 치러지는 제 20대 상항지역 한인회 선거에서 승리를 했었잖아요.
많은 회의에 참석하느라 리버모어로 돌아가는 늦은 밤길이 걱정된다며 늘 문밖까지 나와 운전 조심하라는 부탁을 모두 거두절미 한 채 “…잘햐!” 하고 손을 흔들어 주시는 회장님의 제스처는 집에 가는 내내 저를 실실 웃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고향 사투리를 한쪽으로 밀어둔 채 강산을 두세 번 돌아왔을 세월을 정신없이 살고 있던 터, 본향을 찾은 것 같은 그 말들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는지 ‘그냥’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평화통일 자문위원 자격으로 회의 참석차 서울에 가면 묶고 있는 호텔 뒷골목의 허름한 해장국집을 찾아놓고 맛있는 꽁치 김치찌개를 사 주실 때는 다정한 오라버니 같아도 조찬회의다 싶으면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플랜을 조목조목 설명하시는 게 역시 회장님이셨습니다.
이곳 뉴멕시코주 로스 알라모스로 이사 온 후 회의 참석차 처음 상항에 갔을 때 공항에 꽃다발을 들고 마중 나오신 수줍은 신사분이 계셨으니……. 평생 한번 받아본 공항에서의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얼마나 행복했던지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박장대소 했던 일들이 모두 회장님과의 인연이었습니다.
이제 상항에 가면 진짜배기 충청도 사투리로 배꼽 빠지게 웃겨줄 사람이 없다싶어 마음이 허전한데 사람들을 그토록 좋아하신 회장님은 그 먼 길을 혼자 떠나셨으니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요.
바람은 싸늘한데 따끈한 햇볕이 좋아 늦은 오후 산책을 하면서 저 멀리 노을이 지면 붉게 물드는 Sangre de Christo (예수님의 피) 정상에 쌓인 흰 눈을 바라보며 회장님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
임경애 드림 (뉴멕시코 로스알라모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