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이 흘러가듯 시간이 흘러가고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신묘년(辛卯年) 토끼해도 서서히 역사의 한편으로 물러가고 있다. 모든 것이 떠나가는 계절, 시간의 강물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래서 세모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12월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벽에 걸려 있는 마지막 달력이 마치 나목(裸木)에 붙은 낙엽처럼 앙상해 보인다.
세모(歲慕)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겨울이라는 계절 속에 더 많은 생각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거리에는 벌써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하고 오색찬란한 전등과 징글벨 소리가 들려온다. 12월은 마음이 풍성해지기도 하지만 또한 공연히 들뜨기도 한다.
이제는 나도 살아온 세월보다 남은 세월이 짧음을 허무하게 느끼는 것도 세모라는 계절 탓 때문일까. 저녁노을이 하루를 아름답게 불태워 작별하듯이 푸른 하늘 아래 숲 속 낙엽도 총천연색으로 최후를 장식한다. 주말이면 집근처 공원을 산책하는데 모든 풍상(風霜)을 겪은 듯한 낙엽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올해는 유난히 정겹게 느껴진다.
자연의 이치는 삶의 이치다. 자연은 채움도 있었으니 이제는 비움으로 인간에게 인생을 가르쳐준다. 자연은 거짓이 없고 뚜렷한 목적이 있다.
산이 높다고 다 명산(名山)이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고난, 역경, 병고(病苦)를 통해서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화구(畵具)가 아깝다고 그림을 그리지 않는 화가는 이미 화가가 아니다. 화가에게 화구가 필수품인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 아가페 사랑으로 나누는 존재다. 삶의 본질은 사랑이며, 용서는 행복으로 향하는 열쇠라고 한다.
때로 산다는 것은 먼 시련의 길이기도하다. 노후에는 가족, 지인들과 마음 문을 열고 서로 격려하고 사랑을 나누는 삶은 행복이 된다. 악보는 연주 되어야 음악이 되고 종은 울려야 종이 되는 것처럼 인간은 때로 연약하기에 우리의 모습을 추슬러 생명까지도 보존하며 보다 나은 윤택한 삶을 추구한다.
세모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는 나눔의 계절이기도 하다. 미국도 심한 경기침체로 실업자가 넘쳐 난다. 한 어린이가 쇼핑 몰 산타클로스와 사진을 찍으며 소망사항으로 “우리 아빠에게 직업을 주기를 바란다”라고 했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경기가 어려워지며 인심(人心)도 점점 각박해지는 듯하다.
이제 이민 1세도 독거(獨居)노인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방문이 힘들면 전화라도 드려보자.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마음, 작은 물질이라도 어려운 이웃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된 삶인가. 한 해를 보내는 12월! 이제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기보다 자연 속에서 삶의 지혜를 깨닫고 더 많이 베풀고 나누는 삶을 가꾸고 싶다. 이것이 세월이 일깨워준 연륜(年輪)이 아닌가 상념에 잠겨본다.
채수희
미주 두란노 문학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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