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배부른 거북이 마냥, 저무는 해가 못내 아쉬운지 발길을 떼지 못하던 2011년의 끝자락도 제법 잰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땡그렁~ 땡그렁.. 매년 12월이면 심심찮게 들을 수 있던 맑은 종소리와 정겨운 빨간색 모금통. 지인의 말을 들으니 성탄과 송년의 상징인 구세군 자선냄비를 서울 도심에서 마주치기가 그리 수월치는 않다고 한다.
경제가 어려워 마음까지 꽁꽁 닫힌 것인지, 먹고 살기 버거워 사랑나누기는 뒤로 미룬건지, 그렇게 얼어붙은 가운데에서도 익명의 한 신사가 1억원이 넘는 기부금을 넣고 사라졌고, 90대 노부부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장애 청소년들을 위해 써달라며 2억원의 후원금을 쾌척했다는, 익명의 기부천사들 소식은 올 한해 빨간 모금통을 더욱 달궈주었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경제불황으로 암울했던 19세기말, 이곳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다. 1891년 12월, 표류하던 한 난파선이 샌프란시스코 해안에 극적으로 상륙했고, 추위와 굶주림에 떨던 난민들이 육지에 내려 섰지만 누구 하나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때 구세군 사관 조셉 맥피가 커다란 냄비를 거리 한가운데 걸어 놓고 “이 냄비가 끓게 합시다”라는 글을 적어 놓았다.
갑작스런 재난을 당해 슬픈 성탄을 맞게 된 난민들과 도시빈민들을 먹여야 했던 조셉 맥피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하던 중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옛날 영국의 부둣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용했던 ‘심슨의 솥’ 이었다. 그는 오클랜드 부둣가로 나가 주방에서 사용하던 커다란 쇠솥에 다리를 만들어 내걸고 온정의 손길을 기다린 것이다.
이를 본 많은 이들이 돈이며 먹을 것을 그 냄비에 담아 난민들을 돕게 되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구세군에서는 매년 냄비모양의 통을 걸고 모금을 해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1928년 12월 15일 당시 한국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준섭 사관이 서울의 도심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불우이웃돕기를 시작했다고.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 내가 사는 지역에서 시작됐다고 하니 왠지 남다른 책임감이 느껴진다. 이제 곧 자선냄비는 내년을 기약하며 모습을 감추게 된다. 한번 부르르 끓고 마는 얄팍한 냄비가 아니라, 조셉 맥피의 마음처럼 사람들의 가슴 속에 훈훈한 기억으로 남는 사랑과 온정의 자선 냄비가 일년 내내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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