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돌아보는 타이태닉호 비극
▶ 높이 20층빌딩 규모 최고의 안전시설‘불침선’별명 처녀출항 5일만에 빙산충돌 승객 1,500여명 수장 정확한 사고원인 엇갈려ÿ당시 모습 재현 추모행사
노던 아일랜드의 벨패스트에 위치한 ‘타이태닉 벨패스트 방문센터’에 전시된 타이태닉호의 아일랜드 출반장면 사진.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2년 4월10일 사람들이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엄청난 크기의 초호화 유람선 타이태닉호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발,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출발 전부터 크기는 물론이고 초호화 내부시설과 첨단기술로 이루어진 건조방식, 탑승객들의 면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화제가 됐던 이 배는 뉴욕에 도착하기 며칠 전인 4월15일 빙산과 충돌해 침몰하고 말았다. 총 2,200여명의 승객과 승무원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705명. 나머지 1,500여명은 차가운 바다에 빠져 희생됐다.
◇지구 최대의 불침선
타이태닉호는 영국 화이트스타라인사가 당시 최첨단 기술을 총동원해 만든 배로, 총톤수 4만6,000여t, 길이 269m, 너비 28.2m의 초대형 유람선이다. 높이가 20층 건물 정도였으며 엔진 크기만도 4층 건물 수준이다.
오늘날에는 크루즈 여행선이나 화물선, 항공모함 등 이보다 큰 배가 많이 건조되지만 100년 전에는 이만한 크기의 배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화제였다.
배에는 고급 음식점은 물론이고 도서관, 라운지, 수영장, 체육관, 엘리베이터, 병원 등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객실 수준도 최고급 호텔 정도여서 이 배를 타는 것 자체가 지체 높은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배는 특히 이중바닥과 16개의 방수격실, 특정 수위가 되면 자동으로 닫히는 문 등 안전장치를 많이 마련했다. 선체가 긁히더라도 바닷물이 배 깊숙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 절대 가라앉지 않는 배, 이른바 ‘불침선’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배는 밤 늦은 시각 어두운 상황에서 뉴펀들랜드 그랜드뱅크스 남쪽 150㎞ 지점에서 빙산에 부딪혀 결국 15일 오전 2시20분께 침몰하고 말았다. 방수 격실이라고 자랑하던 곳에 물이 찼고 선체는 두 동강 난 채 가라앉았다.
◇혼돈의 침몰… 죽음 앞에서 발휘된 신사도
타이태닉호가 왜 침몰했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빙산에 부딪혔고 배에 물이 차는 바람에 가라앉은 것은 분명하지만 첨단 시스템을 갖춘 배가 큰 빙산을 보지 못하고 부딪혔다는 것에는 의문이 남는다.
일부에서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는 설, 항해사가 선장 지시를 잘못 들었다는 설 등이 나왔으며 지구와 가까워진 달(수퍼문)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고 최근에는 찬 해수 온도로 인한 미라지 현상이 일어나 빙산 발견이 어려웠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
타이태닉이 갖춘 구명정 수용 가능인원은 모두 1,178명이었지만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705명에 불과했다. 배가 기우는 혼란 속에서 구명정이 다 채워지기도 전에 바다에 띄워졌기 때문이다.
영화 ‘타이태닉’에도 나온 것처럼 이 혼돈의 순간에도 여성과 어린이, 노약자를 먼저 구명정에 태우는 신사도가 발휘된 것으로 보인다.
승객만을 기준으로 할 때 남자는 생존자가 126명, 사망이 661명이었으나 여성은 생존자가 315명, 사망은 101명이었다. 어린이는 생존자 52명, 사망 54명으로 집계됐다. 탈출한 사람들은 이후 조난신호를 받은 인근의 카르파시아호에 의해 구조됐다.
◇20세기를 뒤흔든 초대형 사건
이 사고는 1,500여명의 엄청난 희생자를 내면서 사상 최악의 선박사고로 기록됐다.
뉴욕타임스(NYT)는 9일 타이태닉 침몰이 전쟁을 제외하면 20세기에서 단일사건으로는 존 F.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에 이어 두 번째로 놀라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고소식이 전해지자 거리의 가판대 앞에는 신문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사고 초기 사람들은 이에 관한 소식을 많이 알고 싶어 했지만 타이태닉이 거대한 빙산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충돌해 침수됐다는 소식 외에는 달리 전할 정보도 없었다.
뉴욕에서는 이보다 8년 전 제너럴 스로컴이라는 증기선이 이스트강에서 폭발사고로 침몰, 1,000여명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지만 이 사고가 타이태닉 침몰 이후 지역 뉴스로 치부될 정도로 타이타닉 침몰사건이 갖는 의미는 컸다.
사고 희생자 중에는 유명 인물들도 많이 있었다. 메이시스 백화점 소유주인 이시도르 스트라우스나 맨해턴의 유명 호텔과 초고층 건물들을 다수 소유하고 있는 존 제이콥 아스토르 4세 등이 포함돼 있었다.
◇다양한 추모행사
사고 100주년을 맞아 당시 숨진 이들의 후손을 태운 기념선 엠에스 발모럴호가 지난 8일 타이태닉호의 항해로를 따라 추모 여정에 나섰다.
타이태닉호의 승객 수와 동일한 1,309명이 100년 전의 의상을 갖춰 입고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 이 가운데 약 50명은 타이태닉호 희생자의 혈육들이다.
타이태닉호에서 발굴된 유물 5,000점은 15일 경매에 부쳐진다.
유네스코는 지난 2001년 통과된 유엔의 ‘수중 문화재의 보호를 위한 협약’에 따라 타이태닉의 잔해를 보호대상으로 지정했다.
이 협약은 100년 이상된 수중 유물들을 이용해 상업적 이익을 얻는 행위를 금하고 있지만, 타이태닉호는 침몰 후 100년이 지나지 않아 지금까지 어느 국가도 관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유네스코는 성명을 통해 이 협약에 따라 앞으로는 협약 가맹국들이 4,000m 해저에 있는 타이태닉호 잔해에 대한 ‘비과학적이거나 비윤리적인 탐사로 간주되는’ 탐사를 저지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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