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아들은 대학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맞았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와 아이는 전화하거나 만날 때 마다 서로 편하지가 못했다. 우리로서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아이의 반응이 어떨지 불안하여 좋은 시간을 찾느라 애썼고, 아이는 그런 우리의 심중을 알고 어떻게 든 대화를 피하려 애쓰는 답답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졸업시키는 것은 물론 취업에 대해 조언하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우리 부부는, 막상 아이가 대학생이 되고 취업하게 되면서 운명적 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남의 아이의 공부와 취업엔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건만, 내 아이의 경우엔 그렇지 못한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선생님의 말은 가르침이고 조언이지만, 부모의 말은 잔소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체험했다.
아들이 고학년이던 어느 날, 효과적으로 공부하도록 도와주려는데 갑자기 아이의 표정과 행동이 굳어졌다. 전에도 그런 적이 아주 없지는 않았으나, 그날은 유별나게 거부의 몸짓이 강했다.
누구든 가르치고 조언하려는 게 몸에 밴 우리의 직업병(?)을 모르는 바 아니어서 아이가 어릴 때부터 아주 조심했건만, 부모 중 하나도 아니고 둘 다가 그러니 아이의 스트레스 수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나 보다. 나름대로 꾹 참고 지내다가 사춘기가 되자 더 이상 표정관리가 힘들었던 것 같았다.
여느 부모보다 공부와 진로에 대해 확실하고 현실적이게 조언할 수 있다는 우리의 자부심은 그렇게 우리 아이 앞에서만은 빛을 발하지 못했고, 그래서 우린 더욱 답답했다. 그 이후 우린 더욱 조심했고 아들이 대학생이 되면서는 더욱 그랬다. 마침 학교 기숙사로 떠나 살게 되어 자연적으로도 그렇게 되었다.
다행히 아들은 별 문제 없이 학교생활을 해주어서 자주 연락이 없어도, 가끔 성적이 떨어지는 것 같아도 우린 입을 다물 수 있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갖는 가족시간들이 즐거울 수 있었다.
그랬는데, 마지막 학기를 맞은 아들이 공대생인데도 인턴쉽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고 취업에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린 서서히 조바심이 일었다. 졸업 후 짐을 싸 들고 문 앞에 나타나 집에 들어와 살겠노라 선언하고는 몇 년이 되도록 실업자로 지내는 상상이 문득문득 들기까지 했다.
너무 아이가 혼자 하도록 내버려 두어서 그런가 싶어 결국 취업에 대한 도움말을 조금씩 꺼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침묵을 지키거나 다 알고 있다는 한 마디로 우리의 입을 막았다. 어쩌다 아이가 주말에 집에 들를 때면 집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고 겉도는 대화조차 나누기 부담스럽게 되었다.
6월 졸업식을 앞두고 3월 말에 마지막 학기를 끝낸 아들이 잠깐 집에 왔다. 백수 아들과 스트레스 속에 사는 일이 현실화 되는 것 같아 몹시 불안했는데, 내일 인터뷰에 입을 셔츠를 사러 함께 나가자고 한다.
그 회사와 두 번째 인터뷰라는 것이다. 이미 수십 군데 이력서를 보냈고 몇몇 회사와 인터뷰도 했지만 우리에겐 전혀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부모의 참견이 얼마나 싫었으면 취업한 후에나 알리려고 했을까. 아이는 인터뷰 다음날 입사통보를 받았다.
취업난 속에 취업해준 것을 무척 고마워하고 있던 출근 첫날, 아이가 퇴근하면서 전화를 했다. 첫 출근의 소감을 보고하며 오히려 우리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그 주 내내 퇴근길에 전화하여 이런저런 보고를 하면서 즐거운 마음을 나눠주었다.
그 동안 아이의 스트레스를 모른 채, 제 필요한 때만 전화한다고 섭섭해 하는 마음 반, 웃고자 하는 마음 반으로 나는 아이의 전화소리를 사이렌으로 지정했었다. 그 속 좁음을 미안해하며 당장 아이의 전화벨 소리를 맑은 종소리로 바꾸었다.
김보경 대학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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