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께서는 내 조그만 손에 바이올린을 들려주셨다. 잘 알고 지내던 동네 언니가 바이올린을 켜던 걸 부러워하고 있던 터라 좋아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께선‘비올라’라는 악기를 안겨주시며 바이올린은 하는 사람이 많으니 비올라로 바꾸어 예고를 가자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비올라를 만났고 바이올린보다 더 따뜻한 음색을 지닌 비올라에 점점 매료되어갔다. 내 어머니께선 딸이 원하는 바와 딸이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나 또한 5학년이 된 아들에게 첼로를 들이대었다. 아들의 의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비올라를 하고 딸이 바이올린을 하니 스트링 트리오를 함께 연주하기 위해서 아들이 첼로를 하는 건 나에게 있어서 순리였다. 그렇게 시작된 첼로와의 전쟁은 3년만에 색소폰과 일렉기타를 배우게 되면서 끝이 났다.
아들은 내가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좋아하며 색소폰과 기타를 배워갔다. 하루는 아들이 곡을 하나 작곡했다면서 들어보겠냐고 하는데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느라 애써 외면하며 미루다가 마침내 아들의 음악을 듣게 되었다.
컴퓨터 화면을 가득 채운 음표들이 제법 솜씨가 있게 만들어진 비트가 있는 음악에 맞춰 쿵짝쿵짝하며 춤을추고 있었다.
“응~ 좋구나~”한마디 해 주고는 돌아서는데 눈물이 핑 돈다. 아들은 클래식 음악이 아닌 소위 딴따라 음악에 소질이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어디에 관심이 있어 하는지 모르고 무심히 놓쳐버린 시간들이 아쉬웠고 내 생각만 고집하느라 깨어진 관계가 안타까웠다. 자녀는 소유하는 게 아니고 청지기적인 관점에서 양육해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들이 자리를 비운 지 벌써 일주일하고도 이틀째, 교회 유스미션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보이스카웃 캠핑중인 아들의 빈 방을 바라본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아들의 방에도 아들은 없고 내가 있었구나…이 녀석 돌아오면 그 음악 다시 들어보자고 해야지, 다시 들어보니 엄청 좋다고 말해 주어야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그나저나 이번 토요일 아침에는 영락없이 일렉기타의“띵~띠리리~”소리에 잠을 설치게 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두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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