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주홍빛 스커프 두르고/사브리나에 가고 싶다
아! 이사도라 덩컨처럼 스카프를 휘날리며
죽음보다 선명한 가을을/그 가을을 맞이 하고 싶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블랙홀로 사라져버린/생떽쥐베리의 겨울이 오면
푸른 빛 도는 작은 행성에서/어린 왕자 만나기 위해
작은 새 한 마리 어깨에 얹은 채
사브리나 호수에서 우주선을 타리라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버지니아 울프가 /끝내 나오지 않은 강가에
회색빛 강가에 봄이 온다면
사브리나 바위에 촛불 하나 밝혀 놓고
그녀 위해 작은 기도 바치리라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핏빛처럼 짙은 노을의 여름이 오면
허무해서, 절망해서, 부질 없어서
밀밭 사이로/밀밭 사이로
사라져간 고흐를 만나러 가리라
눈 녹아 흘러내린 물에 은하수가 내려 앉는 사브리나
그 새벽 호수를 보았다면
덩컨도, 생떽쥐베리도, 울프도, 고흐도
그 사브리나를 보았다면.... <졸시/사브리나를 보았다면>
아침 저녁으로 양 어깨가 제법 시리기 시작하는 이 맘 때 쯤이면 나는 비숍(Bishop, California)의 가을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곤 한다. 종종 일상을 벗어나 사진을 찍으러 길 위로 나서길 좋아하는 나는 비숍까지의 길의 풍경을 특히 좋아한다. 요세미티 공원을 지나 천혜의 절경인 하이 시에라 산맥을 넘고 395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보면 가을이 성큼 보이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어떤 사람들은 인물 사진을 즐겨하기도 하고 또 도시의 풍경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정갈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즐겨 찍는다. 비숍의 수 많은 가을 정취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은사시나무 나뭇잎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챠르르르 하며 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떨리는 소리들과 사브리나 호수의 가을이다.
사람들은 슬퍼도 눈물을 흘리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았거나 느꼈을 때도 눈물이 나오듯이 내가 처음 마주 한 사브리나는 참으로 고요하고 아름다워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밤새 달려 사브리나에 도착했을 때, 호수 주위는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는데 새벽 하늘에는 은하수의 거대한 물결만이 적막한 산 속을 밝혀주고 있었다.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삶이란 참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절망감에 자살한 고흐나 상처를 이기지 못했던 버지니아 울프에게 사브리나 호수를 보여주고 싶어 위의 시를 썼었다.
지금 미국 동부에 불어 닥친 태풍 샌디의 영향을 받아 극도로 우울해 있는 뉴저지에 사는 남동생에게도 사브리나 호수를 보여주고 싶다. 어둠 속에서도 은하수가 빛나듯이 삶이란 절망 속에서도 빛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사랑하는 동생에게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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