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의 풀리지 않는 숙제는 몸에서 일어나는 섬유화를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섬유화란 정상적인 조직이 파괴되면 섬유성 결합조직으로 대체되는 것을 말한다. 피부에 섬유화가 생기는 경우, 일반적인 말로 ‘흉터’ 혹은 ‘상처’ 라 한다.
우리의 눈에 쉽게 띄는 피부의 섬유화도 있지만, 안 보이는 모든 내부 장기에 섬유화가 생길 수 있다. 콩팥 내의 섬유화는 신장을 망가뜨리고 허파, 간의 섬유화는 심각한 상태까지 진행되어 사망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이번 주에 미국 신장협회 학회가 샌디에고에서 있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신장학에 관련되는 의사들, 연구가와 관련 회사들의 직원들까지 수천명이 모여 부산하였다. 수년간의 연구를 정해진 시간 내에 발표하고 서로 토론하였는데, 나와 같은 임상의들에게는 너무나 값진 배움의 시간이었다.
50년간의 종합적이고 획기적인 연구를 발표하는 주 강사들의 얼굴은 상기 되어 있었다. 당뇨 환자들에게서 혈당이 콩팥에서 흡수되는 것을 차단시켜 소변으로 방출시킴으로 당뇨를 조절하는 연구가 실용단계에 와 있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는 한 인간 안에 있는 유전 정보 50억개에 대한 지도를 완성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이 유전자들을 바꾸거나 치료해 줌으로써 의학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실용화 단계까지는 멀어 보였다.
이런 연구의 대가들에게서 몇가지 공통점을 볼 수 있었다. 이들 모두는 같은 분야에 있는 많은 동료들과 협력해서 일해 왔으며 진심으로 그 성공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특징은 그런 대가들은 본인들이 어디까지를 알고, 무엇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야기 해준다는 것이었다. 모르는 부분들을 젊은 연구가들에게 이야기해 줌으로써 다음 단계의 연구를 구상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주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 를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귀중한 자료들을 아낌없이 공유하는 것이 현대 서양의학의 훌륭한 점이라고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학회에서도 섬유화를 예방, 치료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시원한 답이 없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섬유화 즉 흉터나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넘어지거나 긁힌 자리에 섬유화가 이루어지고, 나이가 들어 갈수록 병으로 생기는 상처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의사가 환자들에게서 흔히 보는 상처는 머리에 수술로 생긴 상처, 갑상선 수술로 목에 생긴 흉터가 있다. 이렇게 쉽게 눈에 뜨는 상처도 있지만 진짜 큰 흉터는 옷을 들치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심장수술로 가슴 가운데를 쩍 갈랐던 긴 상처, 명치에 있는 위수술 자국, 오른쪽 상복부에 담낭수술자국, 하복부에 맹장수술 상처, 가운데는 방광, 전립선, 자궁수술 흉터…
어디 이것뿐이랴. 팔에는 투석을 하느라 필요한 혈관 수술자국, 다리에는 심장 수술을 위해 혈관을 뽑아간 흔적, 혈액순환이 안 좋아 혈관을 연결한 수술자리…. 어떤 상처는 아주 크고 두꺼워 흉하기도 하다. 이런 상처를 보면서 우리는 종종 어려움에 빠졌던 때를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상처에 골몰하면, 아픔이 있었던 때에 느꼈던 고통이 실제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 때마다 우리는 자신을 불행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다른 이를 원망하기도 하며 상황과 환경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상처는 우리가 힘든 어려움 속에서도 완전히 넘어지지 않고 잘 살아 왔다는 흔적이자 증거이다.
우리가 힘들었을 때 절대자로 부터 혹은 주위 친지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사랑과 도움을 받았던가.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 몸과 인생의 상처는 보면서 아파하고 한탄하라는 표시가 아니라, 우리가 받은 사랑을 감사해야 할 징표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랑을 기억하라고 섬유화를 막는 방법이 아직도 발견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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