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돈이 많이 든 선거라는 오바마와 롬니의 대결이 오바마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동안 예비선거, 전당대회, 선거유세와 광고, 후보자 토론, 그리고 말, 말, 말… 게다가 허리케인 샌디까지 영향을 미치며 수많은 일들이 대통령선거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그런데 막상 화요일 선거가 치러지고 수요일 아침이 되어도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수요일 아침 나는 여느 날처럼 직장에 갔다. 길거리의 사람이나 자동차도 달라진 게 없다. 직장도 똑 같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거기도 달라진 게 없다. 그런 큰 소용돌이를 겪었으니 뭔가 달라질 만한데 그렇지 않다.
하지만 달라진 게 없는 것은 내 주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중요한 것은 미국전체도 이번 대선이후 크게 달라질게 없으리라는 전망이다. 백악관의 주인이 바뀌지 않고 민주, 공화당의 상하원 의석수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으니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지만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어려운 경제 환경도 계속될 것이고 재정적자, 이민, 세금, 의료보험, 메디케어, 에너지 정책, 동성결혼, 낙태 등 수많은 문제를 둘러싼 이념적 대립도 계속될 것이다. 밖으로는 유럽위기, 이란 핵문제, 북한, 중국, 아프가니스탄 등 국제문제들도 미국을 계속 괴롭힐 것이다.
이번 선거로 달라진 건 없는지 모르지만 더 확실해 진 건 있다. 두 후보의 득표결과를 분석해 보면 드러나듯이 미국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양분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사회가 그동안 여러가지 문제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의견이 양분되는 현상을 보여왔는데 그것이 이번 선거를 통해 더 확실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흑인 10명 중 9명 이상, 미혼여성의 3분의 2, 30세 미만 젊은 층 10명 중 6명 이상, 신앙/종교를 갖지 않은 10명 중 6명 이상이 오바마를 찍은 반면, 백인 10명 중 6명, 백인 남성의 3분의 2, 노령자 10명 중 6명, 기혼여성의 과반수, 신앙/종교를 가진 사람의 과반수가 롬니 후보를 선택했다.
그중에도 가장 두드러지는 양분 현상은 정부의 기능과 역할에 관한 의견대립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10명 중 8명이 오바마를 선택했고 정부가 이미 너무 많이 간섭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10명 중 8명이 롬니 후보를 찍었다.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를 놓고, 즉 최소한의 정부간섭과 느슨한 정치를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정부가 이것저것을 더 챙기는 적극적 정치를 도모할 것인지를 놓고 미국인들은 지금 극심하게 양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화요일 선거를 치르고 수요일 아침이 되어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았지만 사실 수요일 미국의 주식시장은 크게 곤두박질 쳤다. 그 이유는 경기회복과 기업지원에 보다 낙관적, 우호적이라고 여겨지는 롬니 후보가 패배한데다, 백악관과 양분된 의회 간의 갈등이 계속되어 심각한 재정위기를 타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다. 게다가 유럽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이제 독일의 경제 사정도 좋지 않다는 우려도 겹쳤다.
특히 ‘재정절벽(Fiscal Cliff)’이라고 부르는 시한폭탄이 연말에 폭발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것은 연방정부 부채한도를 양측이 연말까지 합의하지 못하면 대규모의 ‘자동 긴축’이 실시되어 감세혜택이 중단되고 국방비가 삭감되는 등 심각한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오바마의 재선은 물론 본인과 그 주변에는 기쁜 일이지만, 일반인들로서는 별로 달라진 것도 없고 다만 어려운 살림살이가 계속된다는 얘기로 들린다. 달라진 게 없다면 치르나 마나 한 선거를 했다는 얘기도 되는데, 그럴 바에야 차라리 수십억달러를 선거에 쓰지 말고 국민들에게 몇 푼씩이라도 나눠 주는 게 좋을 뻔했다는 어설픈 생각도 든다. 그나마 득표수에서 오바마가 승리했다는 점으로 본다면 전반적인 분위기가 4년 전보다는 나아졌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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