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옵니다. 영남 지방에 60년만의 폭설이 내리고 있다는 뉴스를 보며 잠들었는데, 이른 아침 눈을 떠 보니 세상이 하얀 이불에 덮여 있습니다. 집 앞 눈을 치우러 나가시는 아버지를 세수만 겨우 하고 따라 나섰습니다. 포근하게 쌓인 눈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에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고 노래했던 백석 시인이 떠오릅니다.
교과서에 실린 흑백 사진 속에서도 감추어지지 않는 그윽한 눈빛의 백석 시인이 더욱 멋있어 보였던 이유는 바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이 시 때문이었습니다. 눈이 오면 그 어떤 노래나 시보다 먼저 떠오르는 이 시에서 시인은 지독한 가난과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사랑하기 때문에 하얀 눈이 세상에 내린다고 노래합니다.
찬 겨울을 흰 눈이 소복이 따스하게 덮어주듯이, 시인은 가난한 자신의 마음을 사랑으로 풍족하게 덮어주는 것을 하얀 눈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난으로 빈 손이 얼어 터질 정도의 차가운 겨울 한파 속을 걷고 있어야 했던, 그래서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하는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줄 흰 눈이라도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시인이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돌볼 여유도 없이 높은 등록금, 취업난과 같은 사회적 압박 속에서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추운 겨울을 관통해야 하는 우리 세대를 연애, 결혼, 출산, 세가지를 포기한 “삼포세대”라고 흔히 부르는데, 발을 동동거리며 얼음 위를 조심스레 걸어가는 모습이 그 옛날의 젊은 시인의 고백과 많이 다르지 않아서일까요. 낭만을 이야기 할 틈도 없이 추운 겨울을 견디어 내야 한다는 절박함만 가득한 우리 모두가 안쓰러워졌습니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이 추운 겨울, 누군가는 눈발이 흩날리는 거리를 보며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고, 추운 겨울 피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누군가의 쓰라림도 따뜻하게 어루만져줄 수 있는 눈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하얗게, 추운 겨울 바람 따위는 생각나지도 않게, 소복이 싸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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