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분 참 오랜만이다. 사랑은 참 아픈 것이고 그러면서도 참 강한 것인데,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서 행복해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라고 하면 수천 수만 가지의 정의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작년 한국에서 엄청 화제가 되었던, 그래서 그만큼 호불호도 확실하게 갈렸던 박범신 작가의 은교를 마침내 읽었다. 인간의 욕망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주인공 이적요의 사랑과 서지우의 사랑에 더욱 더 초점이 맞추어졌다.
자신의 욕망을 특히나 성적인 욕망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인 이적요. 하지만 17살 은교를 만나면서 그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이적요의 사랑이 욕망에 휩싸인 사랑은 절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욕망이라는 단어보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적요는 은교를 사랑하면서 행복했고, 너무나 간절히 젊음을 원했고, 그리고 은교를 만나서 급격히 무너져 버린 늙은 시인이다. 한편, 은교를 사랑했지만 스승을 더욱 사랑했던 이적요의 제자 서지우. 서로가 서로를 너무 사랑했지만 죽음으로 밖에 표현되지 않는 스승과 제자의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운명의 장난도 읽는 내내 가슴 아프게 했다.
특히나 시인 이적요의 은교를 향한 사랑은 순결하고 완전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완전한 사랑을 이루지만, 주변의 시선과 늙음으로 인해 주저앉아 버린 채 사랑과 젊음에 대해 동경하고 있는 이적요의 모습들이 안타까웠다. 은교가 한 말처럼 “은교보다 할아버지가 더 가여워요”라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하지만 ‘늙음’이 자연이 주는 순리인데도 우리는 그 ‘늙음’을 유린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적요의 입을 빌려 말한다면, ‘늙음’은 잘못된 것도, 추한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난 토요일에 은교를 읽고, 일요일에 영화 은교를 보았다. 주말 내내 은교에 빠져 있었다. 사랑에 대한 편견을 없애지 않으면 이적요와 같은 아픈 사랑은 계속해서 양산되겠지. 안타깝고 슬프고 고독한 이 소설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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