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 1세 건축가로 미 주류 건축계에 큰 족적을 남긴 박기서 그루엔 어소시에이츠 대표가 자신의 손을 거친 각종 프로젝트들의 사진이 진열된 회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박상혁 기자>
1953년 한국전 직후 도미
세계적 명성 건축회사 CEO
굵직한 프로젝트들 완성
커뮤니티 봉사에도 헌신
16일 80세를 일기로 별세한 박기 서 그루엔 어소시에이츠(Gruen Associates) 대표는 한인 1세로서 미 건 축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유명 건 축가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3 년 유학차 도미한 후 LA를 대표하는 세계적 명성의 건축회사의 CEO로서 주류사회에서 성공을 거둔 한인 이민 사회의 아이콘 중 한 명이었다.
고인은 건축가로서의 명성뿐 아니 라 커뮤니티 봉사에도 적극적이어서 한미박물관 이사장, LA 재건위윈회 고문위원, 한미연합회 이사장, 코리 아타운 스퍼시픽 플랜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하버드 웨스트레익 사립고 이사, BBCN은행의 이사장도 맡아 미 교육계와 금융계에서도 활약하 는 등 한인사회와 주류사회에서 폭 넓고 왕성한 활동을 보여 왔다.
고인이 LA로 유학을 온 것은 1953년으로,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 울대 법대에 입학했다가 6.25 전쟁 이 발발하자 LA타임스에 공부를 계 속하기 위해 스폰서를 원한다는 기 고를 했다. 이 기사를 접한 작가 제 임스 미치너가 후원해 당시 단돈 80 달러를 갖고 도미한 그는 이스트 LA 칼리지 건축학과에 들어간 후 곧 UC버클리 건축학과에 편입해 졸업 하고 MIT 공대 대학원에서 도시계 획을 공부했다.
이후 1961년 건축회사 그루엔 어 소시에이츠에 직원으로 들어온 고인 은 입사 20년만에 대표직에 오르면 서 50년이 넘는 세월을 회사에 바쳐 LA 지역을 대표하는 종합 건축회사 로 성장시키는 신화를 썼다.
아시아계가 극소수였던 입사 당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느끼면서 도 자신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생각 하고 열심히 일했다는 고인은 1969 년부터 LA 공항에서 놀웍을 연결하 는 105번 프리웨이 프로젝트를 시작 해 25년 동안 성공적으로 마무리했 고, 이 프로젝트로 전국적으로 명성 이 알려지면서 회사에서 부사장, 파 트너 등을 거쳐 1981년 이 회사의 대표(CEO)가 됐다.
고 박기서 대표가 생전 설계하고 고안한 건축물과 도시계획 및 환경 프로젝트는 LA는 물론 전 세계 곳 곳에 포진해 있다.
대표적인 건축물은 LA 한인들에 게 친숙한 한인타운 내 코리아타운 플라자와 서울정을 비롯해 오렌지 카운티의 퍼포밍 아츠 센터, 사우스 코스트 플라자, 샌타아니타 패션팍, 베벌리힐스 로데오 드라이브의 라 드로 스토어, 그리고 서울의 대한교 육생명 빌딩, 자카르타의 센추리 플 라자 등 30여개가 넘는다. 또한 그 가 주도한 대표적인 도시계획물로는 LA의 105번 프리웨이를 비롯, 메트 로 골드라인 등 40여개가 넘는 프로 젝트가 있다.
고인은 언어와 피부색에 따른 차 별을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두 배 이상 일하고 노력했고, 누가 봐도 빈 틈없이 일을 처리하는 등 남다른 성 실함과 전문성으로 주류사회에서 성공한 건축가 및 기업인으로 인정 받아 한인 차세대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박흥률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