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전체가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하필이면 저녁 시간대라 사람들은 다시 전기가 들어오기까지 약 20분 가량 발을 동동 구르며 짜증이 나 있었다. 나 역시 컴컴한 방 안에서 답답하고 신경질이 날 뿐이다. 제 풀에 지쳐 어둠 속에서 그저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오래 전 네팔 여행 때 늘 겪었던 정전 사태가 떠올랐다.
내가 묶었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낮에 한 차례, 저녁에 한 차례, 하루에 두 번 정도 정전이 되고,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정전이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저녁 챙겨 먹고, 씻고, 옷 갈아입고, 잘 준비해야 하는 그 시간쯤에 온 사방이 깜깜하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꺼진 불이 다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니, 어둠 속에서 그저 멍하니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정전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지웠던 생각들, 잊었던 추억들을 곱씹고, 그리운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들이 모락모락 떠올랐다. 내 장례식 때는 누가 올까 상상해 보기도 하고, 결혼할 때 어떤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을까를 계획하고,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뭐하고 지을까 하며 그야말로 쓸데없는 생각만으로 가득 채워지는 정전의 시간이었다.
지금은 생각지도 못할 일일 것이다. 황금 같은 저녁 7시에서 10시 사이에 친구를 만나 고기를 굽거나, TV를 보거나, 하다못해 페이스북을 뒤적이며 누가 어디 가서 뭘 먹었는지 열심히 확인하기에 바쁜 시간이다. 조용히 앉아 생각을 하기에는 지금 우리들의 공간은 너무 밝지는 않은지.
그러고 보면 하루 25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얼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넉넉함과 여유가 네팔 사람들 얼굴에서는 가득 흘러 넘쳤던 것 같다. 그들은 이렇게 그 날의 피곤과 스트레스와 우울을 그 날에 다 치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정전의 시간에 말이다.
인터넷도 전화도 할 수 없는 오직 ‘생각’만이 가능한 시간. 더군다나 어둠이 주는 왠지 모르게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그 분위기도 한몫 단단히 한다. 나의 말이나 행동을 반성하게 하고, 혹시나 다쳤을 상대방의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상처받고 스트레스 받은 나 자신을 위로하고 안아주고 다독여 주는 이 어둠을 잘 활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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