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티센터 한복패션쇼를 보고
▶ 아무 설명 없이 등장한 200여벌의 한복 어설픈 진행… 어색한 아마추어 모델들 많은 부분은 한국 정부의 예산부족 원인 게티가 제공한 천금의 기회 날려 아쉬움
지난 20일 저녁 게티 센터에서 개최된 한복패션쇼는 한마디로 실망스러웠다. 루벤스의‘한복을 입은 남자’ 전시회 관련 이벤트로 LA 한국문화원이 공동주최한 이 행사는 기대를 안고 몰려든 초청관객들로 450석 오디토리엄이 가득 차는 성황을 이뤘으나, 쇼는 서툴고 어설픈 진행으로 보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 패션쇼를 위해 지난 1년 동안 LA 한국문화원이 얼마나 애를 썼고 힘들게 준비했는지 잘 아는 사람으로서,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고 싶었으나 참으로 웬만하지가 않았다. 물론 재미있고 아름답고 자랑스런 순간들도 있었지만, 옥에 티가 있으면 티만 보이듯이 잘 한건 카운트 되지 않고 못한 것만 보인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또한 많은 부분이 예산 부족에서 온 결함이어서, 미국 문화예술계의 리더들 앞에서 확실하게 국위선양을 할 수 있었던 이 국제적인 행사를 위해 따로 예산을 배정해주지 않은 한국 문화체육관광부를 원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음악, 조명, 영상, 세트, 모델, 진행… 모두 한숨이 나왔다.
패션쇼는 예정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시작됐고, 토마스 크렌 게티 콜렉션 부디렉터와 스테파니 슈레이더 큐레이터, 신연성 총영사의 인사말에 이어 김영산 문화원장이 루벤스의 ‘한복을 입은 남자’ 복원 패션의 모델이 되어 무대에 등장한 거기까지는 좋았다.
이후 거의 두시간 동안 쇼는 어떤 설명도 없이 그냥 흘러갔다. 200벌이나 된다는 한복들이 어느 시대, 어떤 신분, 어떤 경우에 입는 옷들인지 아무런 표시도 없이 계속 지나갔다. 물론 시대 순으로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로 넘어간다는 것은 알았지만 한국인조차 정확히 식별하지 못하는 의상을 외국인들은 무슨 수로 알 수 있었을까? 해설자가 있었거나 영상이라도 이용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더 이상했던건 찬조출연자들에 대한 소개도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서 초청된 타악그룹 ‘유소’(이날 쇼의 그나마 볼만했던 공연이었다)는 프로그램에라도 한줄 언급이 됐지만 독무를 춘 전통무용가는 누군지, 가야금과 플루트 이중주의 연주자들이 누군지, 느닷없이 무대에 오른 남성합창단은 이름이 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 합창단은 무대에 선 채로 반주 준비가 안 돼 10여분을 어정쩡하게 서있고, 스탭들은 우왕좌왕하고, 관객들은 기다리다 못해 중간박수 쳐주기를 몇차례, 그러고서 부른 노래가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과 ‘보리밭’이었으니 참으로 뜬금없는 순서였다.
또 거슬렸던 것은 모델들이었다. 아무리 아마추어 발런티어들이라고는 해도 표정과 워킹이 너무도 무표정하고 성의가 없어서 화가 났거나 불만에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한번이라도 전문가의 지도를 받았다면 걸음걸이, 동선, 시선처리가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왕 예쁜 옷 입고 무대에 서는거면 좀 웃어주지, 아무리 멋진 한복을 입었어도 표정이 그러니 보는 사람이 불편해서 패션쇼에 몰입되지가 않았다. 대다수 1.5세나 2세로 보이는 60여명의 모델들을 보면서 한국아이들은 미국에서 자랐어도 얼마나 무표정하고 프리젠테이션에 약한지를 집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행사였다.
한 씬에서 다음 씬으로 넘어갈 때마다 흐름이 뚝뚝 끊겼던 점, 품위있는 국악보다 사극 OST같은 음악을 많이 사용한 점, 영상의 조악함, 가마까지 등장했지만 아무 액트 없이 싱겁게 지나간 혼례장면 등 아쉬운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게티에서는 이날 행사에 직원이 총동원되는 등 많은 신경을 쓴 표시가 역력했다. 7시부터 한시간 동안 열어준 리셉션에서는 맛있는 음식과 음료수를 양껏 제공했고, 관계자들은 게티뮤지엄에서 패션쇼가 열리긴 처음이라며 엄청난 흥분과 기대감을 표시했었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그렇게 흘려보냈다. 25달러에 티켓을 판매한 22일 쇼는 좀 나았을래나.
<글 정숙희·사진 하상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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