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무보험자는 쓰러지거나 나이가 들때까지 방치 부자 환자 대상으론 실험단계 시술·신약도 적극 판촉 의사의 윤리·양심 탓 하기엔 의료제도 너무 엉망진창
■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어디로
조지아주 애틀랜타 소재 그래디 메모리얼 하스피틀의 응급실로 한 여성이 조용히 들어섰다. 이 병원은 의료보험이없는 애틀랜타 빈민들의 마지막 보루였다. 그녀는 응급실이동침대에 걸터앉아 의사가 불러줄 때까지 무려 다섯 시간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녀가 들고 온 가방에는 물에 적신 푸른색 타월이 둘둘 말린 채 들어 있었다. 그리고그 안에는 원상복귀를 원하는 그녀의 오른쪽 유방이 담겨있었다. 제자리에서 떨어져 나간 젖가슴은 수년간 유방암치료를 미뤄온데 따른 결과였다.
치료를 차일피일 미뤄온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바뀔지 모른다는 두려움, 텅 빈 주머니, 연중 단 하루도 없는 유급휴가등이 서로 결합해 병원 접근을 가로막는 높다란장애물을 만들어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종양은 점점 부피를키웠고 결국 오른쪽 젖가슴으로의 혈액공급을차단하기에 이르렀다.
혈액공급이 끊긴 가슴은 비를 맞지 못한 식물처럼 시들었고 결국 말라비틀어진 꽃잎처럼 몸체에서 이탈했다.
2003년의 어느 날, 응급실에서 그녀를 제일 먼저 진료한 의사는 현재 미 암협회 최고 의료책임자로 활동 중인 오티스 브로리였다.
죽은 젖가슴을 들고 찾아온 환자를 보며 오티스는 말로 형용하기 힘든 충격을 받았다. 당시의경험은 미국의 의료제도가 ‘빈자’와 ‘부자’ 사이에서 극과 극을 오간다는 그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평소 두 개의 극단적인 얼굴을 지닌 미국 의료시스템을 향해 거침없는 독설을 날리며 ‘업계’로부터 존경과 반감을 동시에 받아온 그가 지난해현직 언론인 폴 골드버그와 함께 의료계의 현실을 고발하는 책을 공동으로 펴내게 된 배경에는누더기처럼 헤어진 젖가슴을 들고 응급실을 찾아온 여자를 보았을 때의 충격과 분노가 서려 있다.
오티스는 찢어지게 가난한 미국의 무보험자는종종 가장 기본적인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반면주머니가 두둑해 좋은 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효과가 입증되지도 않은 신약을 처방받는 등 과다치료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과다치료는 과소치료만큼 위험하다.
오티스는 “우리의 의료제도는 필요할 때 적절한 보살핌을 제공하지 못하며 비싸고 불필요할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한 치료를 중단시키지도못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잘못된 의학적 접근법이‘ 돈이 된다’는 이유로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지금의 의료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오티스는 또 “너무도 많은 환자들이 ‘지갑 조직검사’를 받는다”고 밝혔다. 환자가 어떤 치료를받게 될지는 ‘지갑 검사’ 결과에 좌우된다는 날선 주장이다.
돈 없고 의료보험도 없는 환자들은 “더 이상치료를 미룰 수 없을 정도로 병세가 심해지거나정부의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 때까지 손 놓고 기다려야 한다.”돈은 없지만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환자는 대체로 환영을 받는다. 이들은 예외없이 수가가 낮게 책정된 정부보험인 메디케어나메디케이드의 적용을 받지만 통제 불능의 당뇨병과 신부전증, 심장질환, 말기 암 등은 병원의 입장에서 충분히‘ 수지를 맞출 수 있는 병’이다.
돈 많은 환자도‘ 의료계의 탐욕으로 인한 과대치료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의사들은 ‘부자 환자’를 대상으로 활발한 ‘판촉활동’을 벌인다. 비씨지만 증세를 호전시키는데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해롭기까지한 시술과 신약을 이것저것 권한다. 몸이 아픈 사람이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저 믿고 따라야 한다.
오티스는 “실험단계의 신약에 도박을 거는 환자들의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에 이들의 희망에찬물을 뿌리고 싶지 않지만 과학보다 이윤과 추측을 앞세워 환자들의 희망을 함부로 악용하려드는 나태하고 타성에 젖은 의료인들의 작태에 신물이 난다”고 토로했다.
그는 불필요하지만 호되게 비싼 빈혈 치료제를다량으로 주입받은 뒤 사망한 한 “돈 많은 여성환자”의 사례를 제시했다. 사건발생 후 실시된 새로운 연구결과 문제의 약품은 식물 속성재배제인 미러클-그로처럼 암을 급속히 키우는 것으로밝혀졌다.
진행속도가 대단히 더디기 때문에 방치해 두어도 그만인 초기 단계의 미세 종양을 제거하기위해 과다치료를 받다가 숨진 전립선암 환자의경우도 비슷한 유형에 속한다. 불필요한 과다치료로 생존확률이 꽤 높았던 환자를 서둘러 저세상으로 보낸 셈이다.
물론 오티스의 독설에는 늘 드센 반박이 뒤따른다.
“세상에 어느 의사가 자신의 환자에게 고의적으로 해를 끼치려 들겠느냐”는 힐난 섞인 지적이주류를 이룬다.
존스 합킨스 메디칼 인스티튜션의 고통경감 치료 디렉터인 토머스 스미스는“ 의사는 몽유병 환자이지 악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의사들은 망가진 의료제도 속에서 밤잠을 설쳐가며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문제는 의사가 아니라 오작동을 하고 있는 의료제도라는 뜻이다.
스미스는 의료시스템 개선은 의사와 간호사의힘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일부 사회적 변화와 사람들의 인식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오티스의주장에 동의했다.
오티스는 환자 스스로가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치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추가검사와 치료는 대부분 환자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예비 의료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의과대학 졸업생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히포크라테스선서’를 한다.
히포크라테스는 기원 전 5세기께 활약했던 그리스의 의사다. 고대 중국의 전설적 명의인 화타나 편작이 신기의 의술로 그들의 이름을 후세에전한데 비해 히포크라테스는 ‘의료의 윤리적 지침’을 제시함으로써 의학사의 첫 머리를 장식했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며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선언하노라”로시작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양심과 위엄’으로 의술을 베풀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며‘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다는 다짐이 포함된다.
의사의 탐욕에 대한 오티스의 비난은 다소 지나친 바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고 결의한 초심을 수시로 되새기며‘ 양심과 위엄’을 추스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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