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코리아타운이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코리아타운이라는 것은 자랑스러운데 너무 넓은 나머지 흑인폭동이 자주 일어나는 사우스센트럴 지역과 경계선을 맞대고 있는 사실이 좀 부담스럽다. 1965년의 왓츠폭동, 1992년의 LA폭동도 사우스센트럴에서 시작 되었었다.
플로리다에서 17세의 비무장 흑인소년을 사살한 백인 방범대원 조지 짐머만이 재판에서 무죄평결 선언되자 뉴욕과 LA의 사우스센트럴에서 또 소요가 일어나고 있다. 엊그제 저녁 코리아타운 모임에 참석했다가 10번 프리웨이를 타려고 크렌셔 블러버드로 가고 있는데 흑인청소년들이 프리웨이 진입로를 막고 난폭하게 데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LA폭동 때 흑인들이 지나가는 차를 세워 백인들을 폭행하던 장면이 떠올라 황급히 차를 돌리려는 순간 서너 명이 내차를 가리키며 뭐라고 큰 소리 치는데 식은땀이 났다. 흑인데모가 점점 폭력화해 오늘부터는 경찰이 이 지역에 대규모로 배치되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코리아타운이 또 죽을 맛이다.
흑인들의 데모는 왜 전국으로 번지고 있는가. 비무장한 흑인소년 트레이본 마틴(17)이 억울하게 사살 되었는데도 가해자인 방범대원 짐머만은 무죄로 풀려나는 판국이니 아들을 두고 있는 흑인들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나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트레이본과 같이 생겼을 것이다”라고 말한 사실이 흑인부모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인종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말을 아껴야 하는데 오바마가 큰 실수를 한 것 같다. 평결이 나오자 뒤늦게 오바마 대통령은 일체 이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어떻게 무죄평결이 이루어 질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사건을 기소한 검찰의 과욕도 있다. 방범대원 짐머만을 본보기로 무겁게 처벌 하려는 의욕이 지나쳐 그를 2급 살인죄로 기소한 것이다. 그런데 ‘2급 살인죄’는 증오나 악감정을 갖고 저지른 살인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범죄다. 따라서 죽이고 싶은 심정이 아니었다는 것만 증명되면 무죄로 평결날 수 있는 구멍이 있다. 검찰이 짐머만을 좀 낮은 죄목으로 기소했다면 짐머만은 유죄로 판결났을 텐데 고의를 필요조건으로 하는 2급 살인죄를 적용하는 바람에 ‘살인해도 무죄일수 있다’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다.
CNN은 엊저녁 B37로 불리는 여자 배심원과 단독 인터뷰하는 특종을 했는데 배심원들이 무죄평결을 내린 이유는 무엇보다 짐머만이 흑인소년과 몸싸움 하면서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느꼈다는 것을 배심원들이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그녀가 밝혔다. 정당방위를 중요시하는 미국 사법시스템에서는 배심원이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흑인인 미국에서 흑인들이 인종차별을 들어 데모를 하고 있으니 보통 역설적이 아니다. 만약 소년을 사살한 방범대원도 흑인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방에서 일어난 조그만 사건으로 취급 되었을 것이다. 짐머만 사건은 인종갈등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에 전국뉴스가 된 것이다. 미국은 흑인을 대통령에 선출하는 역사를 이루어 냈지만 흑인들은 아직도 미국사회가 흑인청소년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시각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더구나 흑인과 히스패닉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요즈음 히스패닉계인 짐머만의 흑인살인은 참을 수 없는 오만한 범죄로 흑인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젠 히스패닉들마저 백인행세 하네”가 흑인들 밑바닥에 깔린 감정으로 보인다. 짐머만 케이스는 미국의 시스템이 고쳐지지 않는 한 인종갈등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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