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첩을 꺼내든 것처럼 나무 잎들은 고운 빛깔로 물들이며 가을의 중심을 넘고 있다. 또 가만히 귀기울이면 들녘 밟고 오는 바람소리에 고개 숙이는 계절 속에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공기가 한 여름 무더위에 지친 세포마다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참으로 계절의 흐름이 신비롭다. 마치 세상의 주인이 자기들인 양 오만하게 휘둘러온 인간들의 온갖 횡포로 인해 ‘이상기온’ 이니 뭐니 해도, 계절은 의연하게 제 갈 길을 간다. 봄 지나 여름, 그리고 여름 지나 가을…. 창조주의 ‘거룩한 뚝심’이라고 할까.
펼쳐진 눈부신 억새의 물결속의 바람이라도 불면 사그락 사그락 박자 맞춰 노래하는 그야말로 은빛 억새로 출렁되는 가을 잔치가 한창이다. 마을 안 건너 집 뒷뜰엔 감나무마다 알알이 고운 붉은 등을 내걸기 시작했고, 넘어질듯 하면서도 무리지어 다시 일어나는 가을바람 선율에 맞추는 억새의 춤사위 속에 우리의 삶의 선율을 느껴보게도 한다.
높고 푸른 하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파고들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뜬구름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매년 맞이하는 가을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요즈음 난 가을이 사뭇 새롭게 다가온다.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세세한 변화들이 삶을 지배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젊었을 때에 가졌던 꿈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가치의 변함을 알게 되었고, 행복과 아름다움은 무엇보다도 첫째로 당연히 건강이 최우선이어야 하고, 진정성과 참됨과 진실함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더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고통의 날에 처해 있을 때 무섭도록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닌가보다 갑자기 불어 닥친 나의 건강이상으로 정말 원치 않은 어려운 수술을 받고 요양 중에 느낀 나의 삶이 왜 이리 쓸쓸하고 때로는 우울함과 서러움이 많은지…. 그렇게 좋아하던 가을이었건만 금년 가을은 근엄한 표정으로 나에게도 한 해의 결산서를 요구하는 것 같다. 모래알처럼 빠져나간 건강했던 그 젊음이 마냥 그립고, 더욱이 건강하게 열매 맺는 삶을 살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말이다. 감사하게도 내가 고통 중에 빠져 있을 때 바라만 보아도 강 같은 평화를 안겨준 기도의 친구들, 음식 보따리 챙겨주며 제때 식사하라고 당부하는 모성애를 느끼게 한 분들, 꽃바구니와 격려 카드를 보내어 위로해준 분들. 많은 위안의 사람들이 나를 찾아 주었다. 그들을 가졌다는 것은 귀한 보물을 가진 것처럼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이제 온 천지가 단풍으로 곱게 물들면 난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아픔과 그 고통, 그 힘겨웠던 시간들을 훨훨 털어내고 오랫만에 화사하게 치장(?)하고 남편과 모처럼의 나들이를 즐길 것이다. 그 뿐인가 친구들과 수북이 낙엽 깔린 오솔길을 따라 밀린 얘기로 꽃피우며 마냥 걷고 또 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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