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사성어 중에 마부위침(磨斧爲針)이란 말이 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의미이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 사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옛날 이백이라는 사람이 깊은 학문의 뜻을 가지고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에 은거(陰居)하여 공부를 하다가 너무 어려워서 포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노인이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것을 보고 다시 뒤 돌아가서 학업의 뜻을 이루었다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 있는 인내와 노력으로 뜻을 이룬다는, 격려의 금언이라 하겠다.
그래도 모든 일에 때와 여건이 따라야 줘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내가 엉뚱한 일을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우스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일을 저질렀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버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색소폰은 값이 비싸고 중량이 무겁기도 하지만 폐활량도 좋아야 하고 또 연습할 공간도 필요하다. 내 나이 망구(90)를 바라보는 나이다. 아무리 100세의 시대를 살아간다 해도 무리한 선택이라고 주위에서도 말한다.
벌써부터 새로운 취미생활로 간편하다고 생각한 기타를 배우려고 했으나 왼손이 6.25 전쟁 때 부상으로 인해 왼손가락으로 키를 확실하게 잡을 수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에 다른 악기를 배우려 해도 시간과 여건이 여의치 않아 미루어 왔었는데 메시야 평생교육원 시니어 교육프로그램에 색소폰 클래스가 2년 전 봄 학기부터 개설되었다. 안성맞춤으로 내가 평생교육원 개원 때부터 문예반 강사로 봉사하고 있기 때문에 매주 수요일 같은 날이어서 내 맡은 시간이 끝난 오후에는 배울 수 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듯이, 마음먹은 김에 색소폰 클래스의 허황 씨와 폴스처치에 있는 뮤직 숍에 가서 색소폰을 대여했다. 대여하는 악기는 거의 중고품인데 운 좋게 낡은 게 없다고 신품을 꺼내어 내 앞에서 말짱한 상표를 뜯었다. 나는 나와 새 색소폰이 궁합이 맞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예감마저 들어 흐뭇했다.
사실 뒤늦게 색소폰을 배우는 일이 쉽지 않는 것을 실감한다. 기초학습부터 만만찮다.
기초 음악이론, 운지법, 박자, 오선지에 음계인지, 마우스피스를 색소폰에 끼우고 입술을 말아 오므리고 소리를 내려고 애써도 얼굴 전체가 빨갛게 상충하며 입속의 바람은 펑크 난 공이 바람 새듯 입 가로 새는 바람에 기본음을 제대로 낼 수 없고 힘만 든다. 그래도 배우겠다는 오기로 지도교사의 가르침 따라 열심히 연습하면서도,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면서도 아파트에 돌아와서도 이웃 노인들에게 소음공해가 되지 않도록 눈치를 살펴가면서 열심히 연습한다. 다행히 내 방이 5층 끝 가장자리에 있어서, 방문을 꼭 잠그고 연습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창문을 통해 너울너울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짙어가는 가을 정경 속의 색소폰 소리, 멋진 앙상블이지 아닌가? 색소폰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고 도,레,미,파,솔,라,시,도... 혼자 가을에 흠뻑 취해 본다.
이미 시작했다. 남들이 늙어 망년이 들었다고 우스꽝스럽게 여길지라도 너그럽고 후덕하고 허스키한 S자 색소폰을 목에 걸고 흥에 맞춰 몸도 흔들며 즐겨하는 노래로 늙어가는 인생을 운치 있고 멋지게 살고 싶다.
언젠가는 도끼가 바늘이 되는 날 있겠지, 정말 마부위침(磨斧爲針)하는 심정으로 꾸준히 열심히 색소폰 연습을 게으르게 하지 않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