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루 단위로 흐르던 시간이 주 단위로, 달 단위로 그러고 나서는 해 단위로 바뀐다는 어른들 말씀이 예언처럼 맞아 떨어짐에 새삼 오늘 하루가 지나감이 아쉽다. 추수감사절을 맞고 곧 이어 크리스마스가 오면 올해도 한 권 더해지는 앨범처럼 기억의 책장 속에 꽂혀지겠지.
미국생활 첫 앨범에 자리잡은 나의 최초의 추수감사절은 지금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없지만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와 양가 인사를 다 돌고 지칠 대로 지쳐 미국에 있는 신혼집으로 돌아온 바로 다음날이 추수감사절이었다.
우리 생애 첫 추수감사절 디너를 준비하기로 하고는 부푼 가슴으로 마켓에 가서 제일 작은 터키를 사고 스터핑과 얌, 라스베리까지 장만해왔다.
다른 집에서 먹어본 경험이 많은 남편의 코치를 받아가며 초보 주부인 내가 만들어낸 터키는 겉보기에 그럭저럭 기념사진 한장 찍을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큰 닭처럼 생긴 것이 왜 그렇게 뻑뻑하고 맛이 없는지… 자존심도 상하고 버리기엔 아까웠던 터키는 다음 날 샌드위치로, 다음 날은 샐러드로 변신을 거듭하다 급기야는 카레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십년이 넘게 터키를 입에도 안 대게 되었다.
추수감사절이면 매년 우리 식구는 가족 같은 친구 집에 초대되어 간다. 친구네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 사촌들과 조카들까지 이민 1세대에서 3세대에 걸친 스무 명 넘는 식구들은 살찐 터키와 김치를 곁들여 미국식과 한국식의 잡탕 추억을 공유한다.
아이들은 같이 커가고 우리는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나누는 추수감사절 저녁이 한해 단위로 성큼성큼 다가와도 놀라지 않고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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