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 해가 다 지나간다. 마지막 남은달력을 보니, 지나간 일들에 대한 아쉬움과쓸쓸함이 느껴진다. 이제 곧 흰 눈이 펑펑 내리겠지 하며 하늘을 쳐다보니 당장에라도 함박눈이 쏟아질듯, 어두운 구름 속에서 낙엽들이 갈 길을 재촉하며 찬바람에 휘날린다.
어릴 때 그토록 좋아했던 크리스마스가다가온다. 착한 일을 많이 한 어린이들을 찾아 산타가 높은 굴뚝으로 들어와 선물을 주고 간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시절 나는 꿈을 꾸듯 눈을 감고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곤 했다. 아마도 내가 8살이었을 때 무렵으로 기억한다. 오랜 동안 병환으로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하루는 나를 부르셨다“ 이리 온! 이제 눈이 오면 산타 할아버지가 썰매를 타고 오실 텐데 내 딸은 산타가 무슨 선물을 갖다 주면 좋겠니?” 하고 물으셨다. 나는 준비나 한 듯 대답했다. 그것도그럴 것이, 나는 학교가 끝나면 나 혼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집에 오곤 했다. 왜냐하면 할머니가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오지 말고 좀 놀다가 집에 오라고 하셨는데그 이유는 어머니가 조용히 쉬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나대로그 시간을 어떻게 쓸지를 생각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올 때에는 항상 을지로를 거쳐서 오게 되는데 그 길에는 양쪽으로많은 상점들이 있어서 구경거리가 많았다.
그 중에서 나의 시선을 끌었던 수예점이 있었는데 그곳의 유리 진열장 안에는 초록색의 아주 예쁜 재봉 곽이 놓여있는 것을 본생각이 나서 “어머니! 을지로로 쭉 올라가면 오른쪽에 있는 수예점 진열장 안에 놓여있는 파란 재봉곽을 갖고 싶어요.” 그 당시에는 플라스틱 제품이 없을 때였다. 그러니내 눈에 그것이 신기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어머니는“ 그것이 그렇게도 갖고 싶으냐” 하고 반문 하셨다. 아버지가“ 내일은 성탄절이니 아침에 아래층 안방으로 다들 모여 예배를 보자” 라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아침에 식구들이 모두 모여 앉았는데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쯤 후에누가 문을 똑똑 두드리며, 호호호 라는 음성이 들렸다. 우리는 그 음성을 듣고 좋아라하면서 문을 활짝 여니 산타 모자를 쓴 아버지가 헝겊으로 만든 커다란 자루를 어깨에 메고 “아이구! 무겁기도 해라”하시며 짐보따리를 내려 놓으셨다. 우리는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아버지는“ 너희들이 착한 일을많이 해서 산타가 이렇게 선물을 많이 갖다 주었나 보다.” 그러시면서 자루를 열어 이름을 부르시며 선물을 하나씩 주셨다. “ 이것은 혜자 것이다” 하시며 선물을 꺼내셨는데 그때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그리도 갖고 싶어 하던 수예점의 초록색의 재봉곽이아닌가. 너무 좋아 뚜껑을 젖히니, 그 안에는색색의 수실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 후로 어머니가 기분이 좀 좋으실 때는 수놓는 것을가르쳐 주기도 하셨는데 그 성탄절 이후로는 다시 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병환이 급속도로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12월이 올 때면, 나의 마음 한 구석에 고이 간직된 그 크리스마스의 아름답던 추억이 담긴 초록색의 재봉곽을 다시 열어보며, 철없던 어린 시절과 아늑하고 평화스럽던 우리 가정, 그리고 다시는 뵐 수 없는 나의 어머니, 아버지가 한없이 그리워진다. 다시 창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눈발이 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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