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달력 한 장이 달랑 벽에 붙어 있는 세모의 12월, 또 한 해를 보내는 마음 그리 유쾌하지 않다. 보낸다는 쓸쓸함이 노심을 서글프게 한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 글을 쓴다고, 늦게 배운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며, 조수처럼 밀려오는 노쇠를 막아보려고 기를 쓴다.
비록 노인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다행히 아직 아내와 해로하며 살고 있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컴퓨터 파워를 켜고, 보내 온 메일을 살펴 읽다가 “치매 부인과의 약속”이란 내용에 시선이 멈춰서고, 커서를 천천히 옮기면서 읽어내려 갔다. 어느 병원의 의사가 전해온 내용을 읽어가는 사이 가슴이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며 어느새 눈시울에 눈물이 맺혔다.
어느 의사의 말이다. 간추려 소개하면, 유난히 바쁜 어느 날 이른 아침, 80대의 노신사가 엄지손가락 봉합사를 제거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그 노신사는 9시에 약속이 있다고 의사를 다그쳤다고 했다. 의사는 노신사의 바이털 사인을 체크하고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고 했다.
아직 담당 의사가 출근하려면 1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은데, 연신 시계만 들여다보며 안절부절 초조해 보이는 노신사의 모습이 안타까워서 직접 치료해 주며 노신사와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서두르는 걸 보니, 혹시 다른 병원에 진료 예약이 되어 있으신가 보죠?” 물으니 “요양원에 있는 아내와 아침 식사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인의 건강상태를 물으니 “아내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라고 하기에, 의사는 “어르신이 약속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으시면 부인께서 몹시 언짢아나 하시나보죠?”하고 되물었더니 “아뇨, 아내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지 5년이나 됐는걸요.” “아니 부인이 어르신을 알아보지 못하는데도 매일 아침마다 요양원에 가신다는 말입니까?” 의사의 선뜩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눈치에 노신사는 의사의 손을 꼭 잡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 했다. “아내는 나를 몰라보지만 나는 아직 그를 알아본다오.” 이 얼마나 끔찍한 사랑인가? 진정한 사랑의 표본이요 숭고하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사랑이 아닌지? 내 가슴에 짠한 감동이 파도쳤다.
얼마 전에도, 이런 순애보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울린 일이 있었다. 경북 청송군에서 87세의 노인이 83세의 치매에 걸린 아내를 4년 여, 똥오줌 수발하다가 차마 아내를 요양원으로 보낼 수 없고, 혹 자기가 먼저 간 후의 아내를 생각해서인지 “나랑 같이 갑시다…”유서를 남기고 자가용 승용차로 저수지에 함께 동반자살 한 신문기사를 읽고 안타까워했던 일이 생각난다.
평생을 함께 정을 섞여 살아왔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 어쩌자고 황혼이혼이 유행처럼 번지며, 그렇잖아도 각박하고 인정이 메말라가는 삭막한 세상에 남남으로 원수가 되며, 인생의 마지막을 불행으로 마감하는 일들로 늙은이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하는 현실인데, 아! 멋진 이 노인 신사의 “치매 부인과의 약속” 우리 모두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진정하고 숭고한 플라토닉 사랑에 찬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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