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처가의 혼사가 있어 LA에 들렀다가 하루의 여유시간이 있었다. 처제가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느냐고 묻기에 글렌데일의 위안부상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곳에 가보고 싶다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나와 처, 처제 세 사람이 LA근교에 있는 글렌데일의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가게 되었다.
글렌데일 도서관 뒷 쪽으로 가보니 넓은 공원으로 조성된 뜰이 앞에 펼쳐지고 양지바른 곳에 신문에서만 보던 소녀상이 있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의자에 앉아 먼 곳을 응시하는 15-16세의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은 조선 소녀와 그 옆의 빈 의자, 소녀상 뒤의 바닥에 새겨진 조각난 타일로 만든 그림자와 그 속의 하얀 나비로 이루어져 있고 소녀상 왼쪽에는 평화의 기념비(Peace Monument)라고 적힌 석판에 소녀상을 2013년 7월 30일 건립하게 된 동기와 소녀상을 설명하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이 석판에 새겨진 글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조국인 한국, 중국, 타이완, 일본, 필리핀,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동티모르, 인도네시아에서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성노예로 강제로 끌려간 20만 명 이상의 아시아와 네덜란드 여성들을 추모하며 2012년 7월 30일 글렌데일 시의 ‘위안부의 날’ 선언과 2007년 7월 30일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문 (House Resolution 121) 채택을 기념하며 일본 정부에 이와 같은 범죄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받아들이기를 촉구하는 동시에 인권에 대한 이러한 범죄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소녀상을 직접 보는 순간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감동과 슬픔이 가슴을 메어지게 하였다. 단발머리에 소박한 치마저고리를 입고 반듯이 앉아 두 손을 꽉 쥐고 무릎에 올려놓은 채 맨발로 먼 앞을 응시하는 소녀의 눈동자는 마치 살아 있는듯 하였고 꼭 다문 입과 눈에는 슬픔과 한(恨)이 가득 담겨있었다. 캘리포니아의 따가운 햇살을 받은 소녀상은 구리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소녀의 꽉 쥔 손을 나의 두 손으로 가만히 만져보니 햇볕을 받아 따뜻했다. 또한 가만히 소녀의 왼쪽 볼에 나의 볼을 대어보니 역시 얼마나 따뜻했는지 모른다. 소녀의 눈높이에서 앞을 보니 소녀는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양 볼에는 살아있는 듯 새겨진 눈동자에서 흐른 빗물이 부식되어 푸르스름한 자국이 있었는데 누가 보아도 이것은 소녀의 눈물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조각도 한이 맺혀 눈물을 흘릴 수 있음을 알았다.
그 동안 유명하다는 박물관에서 수많은 세계적 조각상을 보아왔지만 이 평화의 소녀상처럼 나의 가슴이 메어지도록 감동을 주는 조각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한국의 김운성, 김서경 부부 조각가가 조각했다는 이 소녀상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나 루브르 박물관의 ‘다비드 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과 슬프고도 처절하며 동시에 결연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갓 열다섯이 넘은 우리의 누이들이 맨발로 일제에 끌려가 꽃다운 청춘과 인생을 진흙탕에서 유린 당한 그 고통과 수치와 슬픔이 이 조각상의 눈에 그대로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조각상은 소녀의 모습이되 그 눈동자는 모든 고통과 슬픔을 겪은 한 많은 여성의 눈이었다. 소녀상의 왼쪽 어깨에 놓여있는 작은 새는 살아있는 우리 자신과 이미 고통 속에 돌아가신 수많은 우리의 누이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하며, 소녀상 뒤 바닥에 새겨진 조각난 타일 모습의 등이 굽은 할머니의 그림자는 산산이 부서지고 빼앗긴 아름다운 소녀의 꿈을, 맨발은 그들의 고통을 외면한 세계의 양심을, 그리고 그림자의 가슴에 새겨진 하얀 나비는 그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일본의 사과를 받는 날 그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희망을 나타낸다는 설명이 돌 판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소녀상 앞에서 함께 그분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며 그분들의 고통에 동참해 보았고 이런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인들이 미움보다는 오히려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일본이 양심을 되찾아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참된 이웃이 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이 소녀상은 가주 한미포럼 윤석원 대표라는 분이 앞장서서 건립을 추진하고 LA의 한인사회가 힘을 합쳐 정치력을 발휘하여 세운 것이라 하니 우리 미국내 한인 이민자로서 이룬 가장 훌륭한 애국적 업적이라고 생각되며 그분들께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날 소녀상 앞에 꽃다발을 헌화하지 못하여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이 말을 들은 동서가 자신이 나를 대신하여 꼭 찾아가 헌화하겠다는 약속을 해주어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져서 워싱턴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LA에 여행하는 모든 동포들께서는 꼭 시간을 내어 글렌데일의 소녀상을 찾아가 그분들의 고통과 슬픔을 가슴으로 함께 진하게 느끼고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지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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