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을 무척 좋아한다. 어릴 적 하얀 눈이 펑펑 날리는 날은 강아지처럼 뛰어 다녔고 온 몸이 절절 끓는 몸살을 차가운 눈바람 소리로 식히면서 밤을 새워도 눈사람은 꼭 만들곤 했다. 지금도 눈이 내리는 날은 무슨 마술에 걸린 사람처럼 걷고 싶고 바스락 바스락 거리는 눈의 연주소리가 그립다. 눈을 맞으면 마음의 더러움이 깨끗이 사라지고, 상쾌한 공기가 온몸의 상처가 다 씻기는 듯하다. 나무마다 하얀 옷을 입고 지저분한 세상이 하얗게 표백되어 아름다움을 주시는 조물주의 세계가 경이롭다. 그 정경을 창 너머 바라보고 있노라면 고통과 슬픔이 하얀 눈 속에 다 녹아 버린다.
한 20년 전의 일이다.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을 무슨 백화점 세일이 있다고 부추겨서 나갔다가 돌아 오는 길, 사실 세일은 핑계고 눈이 온다는 말에 눈 속의 데이트를 상상하며 나갔는데 예상외로 눈이 쏟아져 하이웨이를 막 빠져 나가는 출구(Exit)에서 차가 팽 돌아 반대 방향으로 멈추어 섰다. 뒤에서 오는 차 운전자는 ‘이곳은 나가는 길’ 이라고 소리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불안과 공포로 떨고 있을 때 어떤 키 큰 미국사람이 문을 두드리며 도와주겠다고 왔다. 그분은 앞의 자기 차에서 삽을 들고 한참을 걸어와 눈을 치우며 핸들을 침착하게 꺾고 차를 돌려주어 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하얀 눈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천사였다.
감사표시를 하려했더니 극구 거절하며 대신 명함 하나를 건네주곤 사라졌다. 포드(Ford) 자동차의 세일즈맨 이었다. 급하게 차가 필요하진 않았지만, 그곳에서 차를 사면서 조그만 감사 표시를 함으로써 마음이 조금은 편해 졌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그때가 2월이라 기억에 새롭다. 지금도 길거리에서 눈으로 인해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다.
또 눈이 내린다. 우리는 2년 전 5월초에 오스트리아를 여행했었는데 하얀 산봉우리와 어우러진 연두색 들판과 붉은 지붕을 가진 그림 같은 전원을 보고 겨울에 눈이 오면 얼마나 더 예쁠까 생각했었다.
그 눈 오는 정경을 배경으로 사랑이 싹터 전개되는 드라마 ‘봄의 왈츠’를 요즘 열심히 보고 있다. 눈처럼 아름답고 순수한 필립(다니엘 헤니) 의 참사랑이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힘들 때 흔들리는 어깨를 조용히 잡아주고 어려울 때 뛰어 다니며 도움을 주며, 위기에서 자기 몸을 던져 생명을 구해주는 용기, 상대방의 마음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참을성, 그리고 벌겋게 눈동자를 물들이면서도 애인의 행복을 위해, 애인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양보하는 아픔… 인생에서 사랑의 힘보다 더 위대한 게 있을까?
남녀가 사랑에 빠질 때 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부부가 살면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덮어주고 좀 섭섭한 마음이 들더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안아주며 산다면 더 행복한 노후가 보장되지 않을까? 사랑의 달 2월에 참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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